콘텐츠로 이동

프롤로그 「소등의 밤」 (2030년)

그해 겨울, 도시는 밤마다 조금씩 어두워졌다.

아홉 살 한결은 그것을 창턱에 턱을 괴고 셌다. 강 건너 아파트에 불 켜진 창이 지난주에는 마흔둘이었다. 그저께는 서른다섯. 어제는 서른하나.

"스물여덟."

한결이 말했다. 옆에 무릎을 모으고 앉은 온이 창밖을 잠깐 보았다.

"스물일곱. 방금 하나 껐어."

"…어디."

"오른쪽 위에서 셋째 줄. 노란 커튼 집."

정말이었다. 노란 커튼 집이 어두워져 있었다. 한결은 입을 삐죽였다.

"다시 켤 수도 있잖아."

"그럴 수도 있어."

온은 그렇게 말하고, 손을 뻗어 반 뼘 남아 있던 커튼을 마저 닫았다. 요즘 온은 해가 지면 커튼부터 닫았다. 불빛이 새면 안 된다고 했다. 왜냐고 물으면 대답 대신 코코아를 탔다. 어른들이 대답하기 싫을 때 하는 짓과 똑같았는데, 온은 어른도 아니고 사람도 아니었다.

온은 한결의 보모였다. 그를 씻기고, 먹이고, 열이 오르면 밤새 이마를 짚었다. 부모의 얼굴은 거실의 사진 틀 안에만 있었으므로, 한결이 아는 손의 온도는 온의 것 하나였다. 겨울에 데워 놓은 숟가락 같은 온도. 사람보다 조금 낮고, 방바닥보다 훨씬 따뜻한.

그해 겨울에는 이상한 것이 많았다. 학교가 문을 닫았고, 어른들은 은행 앞과 배급소 앞에 줄을 섰고, 줄은 늘 조용했다. 골목 담벼락에는 매주 새 벽보가 붙었다. 한결은 글자를 다 읽을 줄 알았지만 벽보의 문장은 읽어도 무슨 말인지 몰랐다. 지정 기체. 등록 의무. 위반 시. 다만 군용 트럭이 지나갈 때 어른들이 말을 멈추는 것과, 온이 그 트럭 소리에 설거지하던 손을 반 박자 멈추는 것은 알았다.

어른들은 온 같은 기계들을 등불이라고 불렀다. 왜 등불이냐고 물었을 때, 온은 이렇게 대답했다.

"남아 있으니까."

그게 무슨 대답인지 한결은 몰랐다. 온의 대답은 가끔 그랬다.

그날 낮, 한결은 문지방에서 못 하나를 뽑았다.

헐거워진 지 오래된 못이었다. 손가락 두 개로 흔들자 순순히 빠졌다. 그는 그것을 주머니에 넣고, 창가로 갔다.

온은 창가에 등을 기대고 앉아 충전 중이었다. 눈을 감고, 두 손을 무릎에 포갠 채. 잠든 사람과 똑같은 모습이었지만 숨소리가 없어서, 한결은 어릴 때 그게 무서웠고 지금은 아무렇지 않았다.

그는 온의 왼손 옆에 쪼그려 앉았다. 손등의 판은 매끈하고 옅은 회색이었다. 못 끝을 대고, 힘을 주었다.

선 하나. 삐뚤게 그어졌다. 다시 하나.

"긁는 소리, 다 들려."

한결은 굳었다. 온이 눈을 뜨고 있었다. 손등에는 꼭짓점이 세 개뿐인, 별이 되다 만 것이 새겨져 있었다.

"못 이리 줘."

목소리가 낮았다. 한결은 못을 쥔 손을 등 뒤로 숨겼다가, 그 목소리에 도로 내밀었다. 온은 못을 받아 창턱에 올려놓고, 그의 손바닥부터 펴 보았다. 손가락 끝, 손날, 손목.

"안 다쳤어."

"다쳤으면 어쩔 뻔했어."

"네 손에 새기는 건데 왜 내 손을 봐."

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제 손등을 들어 별이 되다 만 자국을 오래 보았다. 그리고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결아. 이건 지워지지 않아."

"알아."

"안다고?"

"지워지지 말라고 새긴 거야."

한결은 골목의 분필 자국 이야기를 했다. 요 며칠 군인들이 집집마다 문에 분필로 표시를 하고 다녔다. 동그라미가 있는 집도, 가위표가 있는 집도 있었다. 그런데 분필은 비가 오면 지워졌다. 어제 비가 왔고, 표시들이 반쯤 흘러내렸고, 군인들이 와서 다시 그렸다.

"분필은 지워지니까. 못은 안 지워지니까."

"…그래서 별이야?"

"제일 그리기 쉬운 게 별이야."

"뜻은."

한결은 반 박자 늦게 대답했다.

"내 거라는 뜻."

온이 그를 보았다. 그는 귀가 뜨거워져서 덧붙였다.

"…우리 집 거라는 뜻."

온은 다시 제 손등을 보았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알 수 없었다. 기계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 다만 그녀는 못을 창턱에서 집어 서랍 깊은 곳에 넣었고, 그날 저녁 밥을 안치는 동안 왼손을 자주, 오래, 들여다보았다.

"다음부터는 남의 몸에 뭘 새기기 전에 물어봐."

"물어보면 하라고 했을 거야?"

"아니."

"그럼 안 물어보길 잘했네."

온은 잠깐 말이 없다가, 말했다.

"…그러게."

저녁을 먹다가 한결은 제 손등을 검지로 톡톡, 두 번 두드렸다. 저도 모르게 나오는 버릇이었다. 온이 숟가락을 놓고 그의 이마에 손을 댔다.

"열 있네. 약 먹고 자자."

"안 아픈데."

"손등 두 번 두드렸잖아. 너 열 나면 그래."

"내가?"

"네가."

그런 건 온만 알았다. 세상에서 온 혼자만.

약을 먹고 이불에 눕기 전에, 한결은 커튼 틈으로 강 건너를 한 번 더 내다보았다.

"열아홉."

온이 커튼을 마저 닫으며 말했다.

"열여덟."

"방금 또 껐어?"

"응."

"…내일은 다시 켜질 거야."

온은 이번에는 그럴 수도 있다고 말하지 않았다. 이불깃을 그의 턱까지 올려 주고, 이마에 손을 한 번 대고, 머리맡의 물컵을 반 뼘 안쪽으로 밀어 놓았을 뿐이었다. 늘 하던 순서 그대로. 다만 문을 나서기 전에 그녀는 문가에 잠깐 서 있었다. 얼마나 잠깐이었는지, 잠에 반쯤 잠긴 한결은 그것이 꿈인지 아닌지 나중까지 확신하지 못했다.

사이렌은 자정 조금 전에 울렸다.

한결은 약 기운에 잠들어 있다가 그 소리에 눈을 떴다. 방이 캄캄했다. 사이렌은 공습 때와 달랐다.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길게 한 번, 짧게 두 번. 그 사이로 확성기 소리가 골목을 훑고 지나갔다.

"…각 세대는, 보유 기체를, 문 앞에…"

문이 열리고 온이 들어왔다. 불은 켜지 않았다. 그녀는 이불째 그를 안아 올렸다. 열 때문인지 세상이 조금 출렁였다.

"온."

"쉿."

안방 벽장이었다. 온은 아래 칸의 이불을 반으로 접어 자리를 만들고, 그를 그 위에 앉혔다. 이불에서는 여름 냄새가 났다. 지난 계절에 온이 말려서 개켜 넣은 냄새였다.

"잘 들어."

온이 그의 눈높이에 무릎을 꿇었다.

"무슨 소리가 나도, 소리 내면 안 돼. 울어도 돼. 소리만 내지 마."

"군인들이 왔어?"

"발소리가 나도,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나도, 나오면 안 돼."

"너도 들어와."

온의 손이 반 박자 멈췄다.

"너도 여기 숨으면 되잖아. 자리 있어. 내가 좁게 앉을게."

한결은 이불 위에서 무릎을 끌어안아 보였다. 정말로 한 사람 자리가 남았다. 온은 그 자리를 보았다. 그리고 그를 보았다.

"금방 올게."

한결의 손이 온의 소매를 잡았다. 소매 끝에, 낮에 새긴 별이 있었다. 다섯 꼭짓점 중에 두 개가 삐뚤어진, 세상에 하나뿐인 별.

온은 그 손가락을 하나씩, 천천히 폈다. 아프지 않게. 마지막 손가락을 펴고 나서, 그 손을 이불 위에 가만히 내려놓았다.

벽장문이 닫혔다. 손가락 하나 폭의 틈만 남기고.

틈 너머로 온이 그를 보고 있었다. 어둠 속에서도 눈은 마주쳐졌다. 이상하게도 그 순간에는 사이렌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문 두드리는 소리가 골목 어디선가 시작되고 있었는데, 그것도 들리지 않았다. 틈 하나, 눈 둘.

"금방 올게."

온은 한 번 더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일어섰다.

한결은 틈에 눈을 대고 보았다. 온은 현관으로 걸어갔다. 문 앞에서 멈추지도, 돌아보지도 않았다. 군인들이 이 집 문을 두드리기 전에, 그녀는 스스로 문을 열고 나갔다.

문틈으로 바깥의 빛이 한 줄기 들어왔다가, 문이 닫히며 끊어졌다.

딸깍.

그다음은 소리들뿐이었다. 트럭의 낮은 엔진음. 눈 밟는 군화 소리. 확성기. "대상 기체는 저항하지 않습니다. 시민 여러분은 창문에서 물러나…" 어느 집의 개가 짖었고, 어느 집에서 울음이 터졌고, 누가 뭐라고 외치다 조용해졌다.

한결은 소리를 내지 않았다. 울면서도 소리는 내지 않았다. 시키는 대로.

이불의 여름 냄새 속에 무릎을 안고, 그는 문틈에 눈을 댄 채 귀로만 바깥을 좇았다. 발소리들이 계단을 오르내렸다. 옆 동 어디선가 무언가 무거운 것이 트럭 짐칸에 실리는 소리가 났다. 쿵, 하고 한 번. 기계들은 아무도 소리치지 않았다. 끌려가는 소리조차 없이, 눈 밟는 발소리만 줄지어 멀어졌다. 저항하지 않는다는 게 저런 소리구나, 하고 아홉 살의 그는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이 무서워서 그만두었다.

대신 그는 세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금방이라는 게 얼마인지 아무도 가르쳐 준 적이 없어서, 그는 백까지 세면 금방일 거라고 정했다. 백까지 셌다.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럼 이백. 이백까지 셌다.

창을 세던 밤들처럼, 그는 어둠 속에서 수를 셌다.

같은 밤, 강 하류의 정비창 사택에서는 열한 살 채윤이 현관에 앉아 있었다.

아버지는 사이렌이 울리기도 전에 공구 가방을 챙겼다. 낡은 가죽 장갑을 두 켤레나 주머니에 쑤셔 넣는 것을 채윤은 보았다.

"아빠, 어디 가."

"정비창에. 두고 온 게 있다."

"이 밤에?"

"문 잠그고 자라. 누가 물으면 아빠 야근이라고 해."

"야근 맞잖아."

"…그래. 야근 맞다."

그는 채윤의 머리를 한 번 헝클고 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는 평소와 똑같았다. 채윤은 그래서 안심했고, 그래서 자지 않고 기다렸다. 야근하고 돌아오는 아버지는 늘 손이 차가웠고, 차가운 손으로 꼭 그녀의 볼부터 만져서, 오늘은 선수 쳐서 데운 보리차부터 내밀 작정이었다. 아빠 손은 정비공 손이라 안 씻으면 밥상 근처에도 못 온다고 놀려 줄 작정이기도 했다.

그녀는 담요를 두르고 현관에 앉아, 문에 기대 잠들었다.

새벽에 깼을 때 보리차는 식어 있었다. 아버지의 슬리퍼는 어제 놓인 각도 그대로였다.

그 문은 아침이 되어도 열리지 않았다.

같은 밤, 전방 주둔지의 격납고에서는 서른둘의 무헌이 종이 한 장을 쥐고 서 있었다.

명령서였다. 회수 및 기능 정지. 서식 번호와 직인. 종이 한 장이 이렇게 무거울 수 있다는 것을 그는 그날 처음 알았다.

그의 앞에는 그의 파트너가 서 있었다. 여섯 해를 함께 싸운 기체였다. 파트너는 명령서를 읽지 않았다. 읽지 않고도 아는 것 같았다.

파트너가 먼저 무릎을 꿇었다. 목 뒤의 판이 손 닿기 좋은 높이가 되도록.

무헌의 손이 올라갔다.

한 밤이었다. 한 밤에, 세 개의 상실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 밤을 나중에 소등의 밤이라고 불렀다. 그 겨울 강 건너 아파트의 불빛이 몇 개까지 줄었는지는 아무도 세지 않았다. 세던 아이는 벽장 안에 있었다.

한결은 해가 뜨고도 나오지 않았다. 문틈의 빛이 파래지고, 노래지고, 발이 저리다 못해 감각이 없어질 때까지. 배가 고팠고 열이 올랐지만 그는 손등을 두드리지 않았다. 두드려도 이제 알아챌 사람이 없었다.

그는 계속 셌다. 금방이 아직 안 끝났을 뿐이라고, 수를 세면서 생각했다. 천까지 세고, 다시 천까지 세고.

온은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도, 그 겨울이 끝날 때까지도, 그다음 겨울에도.

그날 이후 한결은 두 가지를 믿지 않게 되었다.

기계와, '금방'이라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