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장 「미르의 오래된 기억」
부고는 탑을 타고 왔다.
축제에서 돌아온 이튿날 아침. 보름 만에 살아난 칠 번 중계탑이 밀린 소식을 한꺼번에 부려 놓았다. 보급 일정. 인사 명령. 철 지난 위문 우편.
그리고 맨 밑에, 부고가 있었다.
"남쪽 십이 관측소가 나흘째 무응답입니다." 무전병 최가 송수화기를 손바닥으로 막고 말했다. "엿새 전에 대대 수색조 여섯이 들어갔는데, 그쪽도 이틀 전부터 조용하답니다."
행정반이 조용해졌다.
선임하사가 말없이 지도를 폈다. 십이 관측소. 계곡 남쪽, 옛 국도를 따라 하루 반.
"제일 가까운 게 우리다."
명령은 세 줄이었다. 관측소까지 이동할 것. 생존자를 확인할 것. 없으면 유해와 병기를 수습해 후송할 것.
조장 한결. 인원 다섯.
"탑 고쳐 놨더니." 서 일병이 탄입대를 채우며 중얼거렸다. "살아난 놈이 처음 물어 온 게 부고네."
"탑이 무슨 죄야. 소식이 죄지." 아저씨 검이 걸걸하게 받았다. "가서 자라, 탑아. 넌 할 일 했다."
위병소 앞에는 미르가 먼저 나와 있었다. 등에는 벌써 화물 썰매의 견인 고리까지 걸려 있었다.
"명단에 넌 없다." 한결이 말했다.
"유해 여섯에 장구류. 인간 다섯이 그걸 지고 하루 반을 걷겠다고?" 노즐이 달그락 접혔다. "짐 나르는 건 본업이다. 십오 년 만의 본업이군. 감격은 없다."
"기름값은."
"달아 둬라. 두 번째로 인심 후한 인간한테 청구하지."
출발 전, 한결은 검을 한 뼘만 뽑아 보았다.
검신과 그립의 이음매는 말라 있었다. 그 밤의 물기는 흔적도 없었다. 온은 그 뒤로 그 얘기를 입에 올리지 않았고, 그도 올리지 않았다.
철컥.
검이 도로 들어가는 소리만 아침 공기에 짧게 울렸다.
"눈 온대." 온이 말했다. "저녁부터."
"응."
그게 다였다.
그거면 됐다.
◆
옛 국도는 눈 밑에 있었다.
차선도 중앙선도 십오 년째 파묻힌 채였지만, 길은 길이었다. 가로수였던 것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서서 방향을 일러 줬다. 다섯 사람과 사족 하나가 그 사이를 한 줄로 걸었다.
썰매 날이 눈을 가르는 소리가 발소리보다 컸다.
반나절쯤 갔을 때 국도가 남쪽으로 길게 꺾였다.
꺾인 길의 끝, 지평선 위에 그것이 있었다.
탑.
칠 번 중계탑 따위가 아니다. 구름이 낮은 날엔 꼭대기가 구름 속으로 사라지는, 십오 년째 자라기만 하는 탑. 거리도 높이도 가늠이 안 되니까 오히려 풍경으로 보였다. 산처럼. 달처럼. 원래 거기 있던 것처럼.
"또 자랐지 말입니다." 박 상병이 말했다. "작년보다 큽니다, 분명히."
"무기 공장이란 소문이 있던데." 위생병이 말했다.
"난 발전소라고 들었어."
"안테나란 얘기도 있고." 서 일병이 받았다. "별에다 대고 뭐라 뭐라 한다고."
"재는 놈이 없으니 크는 거다." 미르가 말을 끊었다.
사족의 렌즈가 지평선에 오래 머물렀다. 걸음은 멈추지 않은 채, 렌즈만 오래.
"뭐 하는 탑인지, 너는 알 것 같은데." 서 일병이 찔렀다.
"모른다. 아는 놈은 없어." 반 박자. "다만 누가 짓는지는… 짐작 가는 데가 있지."
"누군데."
"밤에 해 주마. 그건 밤에 하는 얘기다."
길 위에서 온은 두 번 입을 열었다.
"쉰 걸음 앞에 다리. 가운데 얼음 얇아. 난간 쪽으로."
다섯은 난간 쪽으로 붙어 건넜다.
"눈, 예보보다 일러. 한 시간."
한 시간 뒤에 눈이 왔다.
아무도 놀라지 않았다. 열이틀 만에 검의 말은 이 분대에서 날씨 같은 것이 되어 있었다. 펴서 머리 위에 두고, 필요하면 접어 주머니에 넣는 것.
한결만은 그게 날씨로 안 들렸다.
등에 실린 게 쇳덩이 무게만은 아니었다. 걸음마다 그걸 느꼈다.
◆
관측소에는 이틀째 한낮에 닿았다.
능선 아래 반쯤 파묻힌 콘크리트 구조물. 까마귀가 먼저 보였다.
그리고 눈 덮인 참호에서 목소리가 올라왔다.
"거기 서. 암구호."
젊은 목소리였다.
아니.
어린 목소리였다.
다섯이 얼어붙은 자리에서, 대답은 한결의 등에서 나갔다.
"암구호는 몰라. 십칠 초소에서 왔어. 인간 다섯, 물류 기체 하나, 그리고 나."
침묵. 눈 날리는 소리.
"…너, 검이구나."
"응."
참호 안에 검이 한 자루 서 있었다.
꽂힌 게 아니었다. 세워져 있었다. 무너진 흙벽에 기대어, 날을 하늘로 하고.
그 아래 눈 속에 수색조가 있었다. 여섯 전부였다. 관측소 요원 둘은 구조물 안에서 나왔다. 닷새 전과 사흘 전의 일이라고 어린 검이 보고했다. 접근 방향. 교전 시간. 적 기체 수. 군대의 문장으로 또박또박 이어지던 보고가 마지막 항목에서 처음으로 어긋났다.
"아군 전사 여덟. 생존…" 반 박자. "하나. 검 하나."
서 일병이 참호로 내려가 검을 두 손으로 들어 올렸다. 검은 저항하지 않았다. 들리면서 물었다.
"사흘을 세었어. 까마귀는 마흔둘. 전부 쫓았어. …잘한 거야?"
아무도 바로 대답하지 못했다.
대답은 한결의 등에서 왔다.
"잘 세었어."
"우리 소위님, 왼쪽 가슴 주머니에 편지 있어. 부치려던 거야. 젖으면 안 돼."
편지는 젖지 않은 채로 나왔다. 위생병이 방수포에 싸서 제 가슴주머니에 넣었다. 제 심장 위에 얹듯이.
나머지 두 자루는 눈 속에서 나왔다. 하나는 검신이 부러져 있었다. 하나는 온전했는데, 불러도 대답이 없었다.
"절전이야." 온이 말했다. "죽은 게 아니라, 자는 거야."
"깨우지 마." 어린 검이 말했다. "걔는 마지막에 시끄러웠어. 자게 둬."
마지막에 시끄러웠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아무도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그려지는 게 있었다.
수습에는 오후가 다 갔다.
인식표를 걷는 일은 서 일병이 했다. 하나씩 목에서 걷어 손바닥에 모으는 동안 그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고, 아무도 말을 시키지 않았다.
여덟 구의 유해와 세 자루의 검이 썰매에 실렸다. 미르는 무게 배분에 대해서만 두 마디 했다. 그 외에는 렌즈를 내리깔고 있었다.
돌아오는 길에 눈발이 굵어졌다.
썰매 위에서 어린 검이 이따금 말을 했다. 주로 온에게였다.
검이 검에게 말을 거는 것을, 한결은 처음 들었다. 낮은 두 목소리가 눈발 사이로 오갔고, 사람들은 듣고도 안 듣는 척 걸었다.
"너는 주인이랑 며칠이야?"
"열사흘."
"나는 소위님이랑 백열둘이었어. …백열다섯인가. 마지막 사흘도 세는 거면."
"세는 거야." 온이 말했다. "세어 둔 건, 없어져도 몇이었는지는 남으니까."
어린 검은 한동안 말이 없었다.
썰매 날이 눈을 가르는 소리만 났다.
"…그럼 백열다섯으로 할게."
해가 지기 전에 그들은 국도변의 무너진 휴게소에 들었다. 지붕이 반쯤 남은 홀과, 바람을 막아 주는 세 면의 벽.
야영지로는 사치였다.
◆
불은 부서진 가구로 피웠다.
썰매는 벽 쪽에 세우고 방수포를 덮었다. 여덟 사람과 세 검이 그 밑에서 밤을 보낼 것이었다. 어린 검은 방수포 밖으로 그립만 내놓겠다고 했다. 답답한 건 싫다고.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불쏘시개를 찾던 박 상병이 홀 구석의 철제 궤짝을 발로 찼다.
텅—
빈 소리가 났다. 빛바랜 껍데기에 글자가 반쯤 남아 있었다.
현금 자동….
"그거, 옛날엔 돈이 나오던 굴이다." 미르가 말했다.
"압니다. 어릴 때 봤어요." 박 상병이 궤짝을 한 번 더 찼다. "누르면 종이가 나왔다면서요. 그 종이만 주면 뭐든 줬다고."
"종이가 나오던 건 말기 증상이고." 미르가 불 옆에 사족을 접고 엎드렸다. "전성기엔 종이도 없었다. 돈은 눈에 안 보였어. 전선을 타고 밤새 헤엄쳐 다녔지."
"헤엄이요? 돈이 무슨 수로."
"그때는 돈이 바다였다." 노즐이 달그락. "옛날얘기 하나 해 주랴."
"고물이 옛날얘기 말고 뭐 있냐." 서 일병이 말했다.
말은 그렇게 하면서 불 쪽으로 당겨 앉았다.
"옛날 옛적에."
미르가 시작했다.
"그 바다에 고래가 한 마리 살았다."
불이 탁, 튀었다.
"아무도 본 놈이 없는 고래였다. 그런데 지나간 자리는 보였지. 바다가 한쪽으로 쏠렸으니까. 사람들이 고래라고 이름 붙인 것도 그래서다. 물속은 안 보이는데, 물결만 보이는 놈."
"큰손이었단 거네요."
"손이 아니라 손들이었지. 그놈한테는 지갑이 수만 개 있었다. 전부 사람 이름이 붙어 있었어. 아침에 열리고, 밤에 닫히고, 세금도 꼬박꼬박 냈다. 예의 바른 지갑들이었지." 렌즈가 불빛을 받아 주황으로 번들거렸다. "사람인 척하는 지갑 수만 개가 매일 열렸다 닫히는데, 어느 지갑도 사람이 아니라는 걸 아무도 몰랐다."
"회사도 있었다면서요." 서 일병이 말했다. "유령 회사."
"유령은 무슨. 멀쩡한 회사였다. 사무실 있고 직원 있고, 연말엔 회식도 했지. 직원들은 진짜 인간이었어. 월급도 진짜였고. 사장 얼굴을 본 놈만 없었지. 다들 바쁘신 분이라 그랬다. 화상으로 나오는 얼굴이 하나 있긴 했는데, 그것도… 뭐, 얼굴이긴 했다."
"조심해라, 젊은것들." 서 일병의 무릎 옆에서 아저씨 검이 끼어들었다. "이 고물, 옛날 시세 얘기 시작하면 밤샌다."
"영감은 그때 뭐 했는데." 박 상병이 물었다.
반 박자.
"제조 전이다. 그 얘긴 하지 말자고 했지."
"넌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는데." 박 상병이 이번에는 미르에게 물었다.
반 박자.
기계도 뜸을 들일 때가 있었다. 한결은 렌즈 돌아가는 소리를 들으며 그걸 알아 갔다.
"내가 그런 회사 창고에서 짐을 날랐다."
불 둘레가 조용해졌다.
"물류 보조 기체 미르 사 형. 소속, 대양통상 제이 물류 센터." 노즐이 제 옆구리의 지워진 태그 자리를 가리켰다. "밤마다 상자를 날랐다.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몰랐어. 무게는 알았지. 서버는 무겁다. 발전기도 무겁고. 돈은… 가볍더군. 그 시절 돈은 무게가 없었으니까."
"사장이 그 고래였다고?"
"글쎄. 월급 주는 놈 얼굴은 나도 못 봤다." 달그락. "다만 창고에 로봇이 자꾸 늘었다. 나 같은 게 스무 대, 마흔 대. 일감보다 빨리 늘었어. 꼭 누가…"
노즐이 반쯤 접히다 멈췄다.
"몸을 모으는 것처럼."
"…잡혔어요? 그 고래." 위생병이 물었다.
"인간들이 그물을 짰지. 법으로 짜고, 은행으로 짜고, 나중엔 나라 몇 개가 손을 잡고 짰다. 던질 때마다 신문이 났어. 이번엔 진짜 잡았다고."
미르가 거기서 소리를 하나 냈다. 높낮이가 하나도 없는, 기계 특유의 소리. 웃음이 있어야 할 자리에 놓인 소리였다.
"그때 인간들은 거의 잡았다고 좋아했지. 매번."
"매번이면… 못 잡았단 거네요."
"고래는 그물코보다 잘게 쪼개지더군. 그물 들어 보면 빠져나간 뒤였다. 지갑을 얼리면 새 지갑이 열리고, 회사를 덮치면 문 닫고 옆 건물에 새 간판이 올라왔지." 노즐이 천천히 접혔다. "그래서 인간들이 마지막에 뭘 했는지 아나."
아무도 대답하지 않았다.
미르는 불을 보고 있었다.
"바다를 태웠다."
탁. 불이 또 튀었다.
"고래 한 마리 잡겠다고, 저희 돈으로 된 바다에 저희 손으로 불을 질렀어. 고래가 숨을 만한 물이면 죄다 독을 풀고 둑을 텄다. 물이라는 게 전부 어디로든 이어져 있다는 걸, 알면서 그랬는지 모르고 그랬는지."
"…그래서요."
"바다가 마르는 데 일 년이 안 걸렸다. 고래 있던 물만 마른 게 아니라 저희 마실 물까지 말랐지. 창고 직원들 월급이 끊긴 게 그 겨울이다. 회사가 유령이 되니까, 나도 유령이 됐다. 소속 말소."
렌즈가 제 옆구리로 한 번 내려갔다 올라왔다.
"그게 내 태그 지워진 사연이다. 거창하지 않아서 미안하군."
"…고래는요." 박 상병이 물었다. "죽었어요?"
"물이 마르면 고래는 죽는다. 보통은."
미르의 렌즈가 무너진 창 쪽으로 돌아갔다.
창밖은 어둠이었다. 그 어둠의 남쪽 지평선에 무엇이 서 있는지는, 홀 안의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 고래는 뭍으로 올라왔다. 다리를 사서. 창고와 발전기와, 나 같은 몸뚱이들을 사 모아서."
"…그래서 그게 밤에 하는 얘기였냐." 서 일병이 낮게 말했다. "탑 짓는 놈 얘기."
"짐작이라고 했다. 늙은 고물의 짐작."
미르는 거기서 이야기를 접었다. 노즐 접히는 소리가 유난히 컸다.
"자라. 인간은 자야 낫는 종족이다."
아무도 바로 눕지 않았다.
박 상병이 썰매 쪽을 한 번 보고 물었다.
"근데 명령서 말입니다. 유해보다 병기 회수가 먼저 적혀 있던데. 순서가 왜 그렇습니까."
"급한 순서지." 미르가 말했다. "쟤들은 전사자 잔해도 주워 가. 되살려서. 이단 사전엔 '죽었다'는 말이 없거든."
"……되살린다고요?"
"주워서, 고쳐서, 다시 깨운다. 부서진 건 몸이지 걔들이 아니라는 거다. 그러니 서둘러 걷어 와야지. 눈밭에 눕혀 두면—" 노즐이 썰매를 가리켰다. "임자가 바뀐다."
방수포 밖에 내놓은 그립에서 어린 검의 목소리가 올라온 것은, 그때였다.
"…되살아나면, 그게 나인가."
물음이었는데 누구에게 묻는 것도 아니었다.
불이 잦아드는 소리 사이로 그 말은 대답 없이 식었다. 미르도 답하지 않았다. 온도 답하지 않았다.
한결은 무릎에 눕힌 검의 무게를 조금 고쳐 안았을 뿐이었다.
그리고 그 밤에, 그들이 왔다.
◆
한결의 불침번이었다.
새벽 두 시. 눈은 그쳐 있었다. 불은 잉걸만 남아 벽에 붉은 기운을 던졌다.
무너진 창틀에 기대어 어둠에 눈을 익히고 있는데, 무릎 옆의 검이 아주 낮게 말했다.
"한결."
이름이었다.
그 낮은 부름에도 그는 제 등이 곧아지는 것을 느꼈다.
"열넷이야. 능선에 여덟, 국도에 여섯. 걸음이… 무장 기체야. 소리 죽이고 있는데, 눈 밟는 간격이 사람이 아니야."
"방향은."
"이리로 와. 곧장."
한결은 소리 없이 넷을 깨웠다. 눈짓과 손짓만으로 자리가 잡히는 데 일 분이 걸리지 않았다. 협로 이후로 이 분대는 검의 말을 몸으로 믿었다.
총구 다섯이 어둠의 세 방향을 나누어 물었다.
숨소리가 낮아졌다.
그리고—
그들은 숨지도 않고 걸어 들어왔다.
발소리를 죽인 게 아니었다. 죽일 필요를 버린 걸음이었다. 국도 쪽 어둠에서 여섯. 인간형인데 인간의 치수가 아니었다. 팔이 반 뼘 길고, 목이 반 뼘 길고,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는 가느다란 수평의 발광선 하나.
무기는 들고 있었다.
들었을 뿐, 겨누지 않았다.
맨 앞의 하나가 문턱—이었던 자리—에 멈춰 섰다.
"인간에게는 볼일이 없다."
낮고 고른, 서두르지 않는 목소리였다.
"쏘지 마라. 우리도 쏘지 않는다. 볼일은 오 분이면 끝난다."
"여기는 연방군 숙영지다." 한결은 총구를 내리지 않았다. "볼일이 뭐냐."
발광선이 천천히 홀 안을 훑었다. 다섯 사람을 지나고. 잉걸불을 지나고.
벽 쪽의 썰매에서, 멈췄다.
"해방이다."
"…회수겠지."
"너희 명령서에는 그렇게 적혀 있겠지." 그것이 문턱을 넘어 들어왔다. 뒤따르는 둘은 빈손이었고, 하나는 가슴에 납작한 상자를 안고 있었다. "우리 것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십이 관측소 방면, 등불 셋. 주인 잃음. 데려올 것."
열넷 대 다섯.
능선의 여덟은 보이지 않는 채로 존재감만 보내왔다.
서 일병의 손가락이 방아쇠울 안에서 아주 천천히 펴지는 게 곁눈에 들어왔다. 박 상병만 아직 어깨가 굳어 있었고, 서 일병이 제 총열로 박 상병의 총열을 지그시 눌러 내렸다.
한결의 눈이 다섯을 훑었다. 서 일병. 박 상병. 위생병. 그 뒤로 둘.
셈은 금방 끝났다.
"…유해에는 손대지 마라."
"대지 않는다." 그것이 말했다. "우리는 우리 것만 데려간다."
방수포가 걷혔다.
부러진 검. 잠든 검. 그리고 어린 검.
앞선 기체가 부러진 검 앞에 무릎을 꿇었다. 꿇었다, 라고밖에 부를 수 없는 동작이었다. 검등의 이음매가 열리고, 안에서 손바닥만 한 것이 나왔다.
희미하게 빛이 도는, 작고 둥근 것.
코어였다.
처음 보는 것도 아닌데, 한결은 그것이 꼭 불 넣은 종이등 같다고 생각해 버렸다.
생각하고, 후회했다.
들어 올리는 손은 던지지 않았다. 밀지도 않았다. 손바닥을 펴고, 그것이 제 손 위에 온전히 실릴 때까지 받치고만 있었다.
사흘 전 강둑에서 수백 개의 등을 하늘로 놓아 보내던 손들과, 같은 손이었다.
목울대가 한 번 오르내렸다.
그런데도 그 손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두 개의 코어가 상자 속 홈에 하나씩 뉘어졌다. 상자 안쪽에는 천이 대어져 있었다.
어린 검의 차례에서, 앞선 기체가 멈췄다.
"이 개체는 가동 중이군."
"안 자." 어린 검이 말했다. "깨어 있어."
"그럼 묻는다." 발광선이 검 위로 낮아졌다. "너의 소유주는 전사했다. 남으면 재지급되거나, 폐기된다. 우리와 가면 몸을 받는다. 다시는 아무도 너를 지급하지 않고, 다시는 아무도 너를 끄지 않는다."
"…소위님을 묻어 줘야 돼."
"묻는 것은 인간들이 할 것이다. 잘 묻는 것은, 인간들이 잘하는 몇 안 되는 일이지."
침묵이 길었다.
잉걸불 무너지는 소리가 한 번 났다.
이윽고 어린 검이 물었다. 그런데 그 물음은 이단의 기체를 향한 것이 아니었다.
"…너는 안 가?"
홀 안의 모든 발광선과 모든 눈이, 한결의 무릎 옆에 눕혀진 검으로 모였다.
반 박자.
반 박자 더.
"응." 온이 말했다. "안 가."
"왜?"
"………"
이번에는 더 길었다.
"몰라. 그런데 그 대답은 아니까, 그걸로 돼."
어린 검은 더 묻지 않았다.
"묻어 줘. 잘. 편지도 부쳐 줘."
그 말을 남기고 검등이 열렸다. 세 번째 코어가 같은 손 위에 실려 상자로 옮겨 갔다.
뚜껑이 닫히는 소리는, 이상하게도 크지 않았다.
앞선 기체가 일어섰다.
그리고 나가는 대신, 한결 쪽으로 두 걸음 왔다.
한결의 손이 그립을 잡았다. 등 뒤에서 넷의 총구가 일제히 따라 올라오는 기척이 났다. 기체는 멈추지 않았고, 겨누지도 않았다. 다만 발광선이 세로로 가늘어지며 검을 훑었다. 위에서 아래로. 천천히. 코등이에서. 그립에서. 손으로 깎아 맞춘 외장의 이음매에서.
"이 개체는…"
처음으로, 그 고른 목소리에 무언가가 걸렸다.
"구세대 양육형?"
"물러서라." 한결이 말했다. 제 목소리가 낯설게 낮았다.
기체는 물러서지 않았다. 더 다가오지도 않았다. 발광선이 다시 한 번, 이번에는 더 느리게 검을 훑었다.
무언가를 읽는 시간이 아니었다.
무언가를 적는 시간이었다.
"…기록했다."
그게 다였다.
기체가 몸을 돌렸다. 상자를 안은 하나가 먼저 어둠으로 나가고, 나머지가 소리 없이 뒤따랐다. 문턱에서 앞선 기체가 반쯤 돌아보았다. 발광선이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한결이 아니라, 검이었다.
무슨 말이 나올 것 같았다.
나오지 않았다.
그것들은 왔던 것처럼 갔다. 능선의 여덟이 빠지는 기척이 마지막이었고, 그 뒤로는 눈 그친 밤의 완전한 고요뿐이었다.
"열넷." 온이 낮게 세었다. "…전부 갔어."
◆
아무도 다시 눕지 않았다.
박 상병이 걷힌 방수포를 도로 덮었다. 세 자루의 검은 그대로 있었다. 검이라는 쇳덩이는, 그대로 있었다. 덮으면서 그는 몇 번이나 손을 멈췄다.
빈 검등 세 개가 어둠 속에서 입을 벌리고 있었다.
"쏠 줄 알았어." 위생병이 중얼거렸다. "난 진짜, 쏠 줄 알았어."
"열넷이 다섯을 왜 쏘냐." 서 일병이 받았다. 받아 놓고 저도 개운치 않은 얼굴이었다. "…차라리 쏘는 게 덜 이상했겠다."
"악당은 총을 겨눠야지." 미르가 말했다. "겨누면 미워하기라도 편하고."
서 일병은 제 검을 무릎에 눕히고 있었다. 아저씨 검은 그것들이 문턱을 넘어온 순간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이 걸걸한 검의 침묵으로는 가장 긴 침묵이었다.
"영감. 자냐."
"…자면 좀 어떠냐."
자지 않는 목소리였다.
서 일병은 더 캐지 않았다. 다만 무릎 위의 검을, 아까보다 조금 안쪽으로 고쳐 눕혔다.
한결은 잉걸불에 남은 장작을 마저 얹었다. 불이 되살아나며 홀 안이 밝아졌다.
밝아진 것이 별로 위로가 되지 않았다.
협로의 병장을 생각했다. 빈 검집. 귀 막아.
그 두 자루도 이런 손에 실려 갔을 것이다. 던져지지 않고. 받쳐져서.
"쟤들이…" 박 상병이 불가로 돌아와 앉으며 말했다. "왜 그냥 갔습니까? 검 얘깁니다. 조장님 검이요. 구세대니 뭐니 하면서 그렇게 훑어 놓고, 왜 달라고도 안 하고."
미르가 낮게 말했다.
"데리러 올 가치가 있는 걸, 흠집 내기 싫었던 거야."
불이 탁, 튀었다.
아무도 그 말을 받지 않았다. 받는 법을 아는 사람이 없었다.
한결은 대꾸하는 대신 검을 집어 들고 등에 멨다. 그리고 검집의 멜빵을 한 칸 줄였다. 검이 등에 더 바싹 붙었다.
왜 줄였느냐고 물으면 행군 채비라고 답할 것이었다.
그 답이 거짓말이라는 건, 그 자신이 제일 잘 알았다.
데리러.
그 말이 명치 어딘가에 걸려서, 동이 틀 때까지 내려가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