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장 「정비창의 재회」
후방 제삼 정비창의 아침은 검들의 웅성거림으로 시작됐다.
간밤 입고분까지 스물두 자루. 난로가 돌기 시작하면 절전으로 식었던 것들이 하나둘 깨어나 저희끼리 낮게 웅웅거렸다. 사람 귀에는 잡음으로만 들리는 대역이었다. 무슨 얘기들을 하는지 채윤은 알아듣지 못했지만, 알은체는 빼먹지 않았다.
"밤새 안녕들 하셨고."
몇 자루가 가청 대역으로 내려와 대답했다. 안녕. 안녕은 무슨, 날이 상했다. 삼 번 선반 위에 물 샌다. 검한테 무슨 밤새 안부냐고 반장은 혀를 찼지만, 채윤은 삼 번 선반 위에 양동이부터 받쳤다.
전선의 검들 사이에 소문이 하나 돈다고 했다. 후방 제삼 정비창에 가면 검신보다 먼저 안부를 물어 주는 정비사가 있다고. 지난달에는 폐기 판정 직전의 낡은 검 하나가 후송 트럭 짐칸에서 "제삼으로 보내 줘"를 스물몇 번 반복해서 왔다. 채윤은 그 코어를 사흘 밤을 새워 살려 놨고, 반장한테는 수당 대신 잔소리를 받았다. 밑지는 장사였다. 그녀는 밑지는 장사에 소질이 있었다.
공구벨트 왼쪽 두 번째 고리에는 놋쇠색 인식표가 걸려 있었다. 정비공 등록 번호가 찍힌, 손가락 두 마디만 한 패. 모서리가 닳아서 번호 앞자리는 눈이 아니라 지문으로 읽어야 했다. 채윤은 인두를 잡기 전마다 그것을 한 번 쥐었다. 부적이라기엔 차갑고, 유품이라기엔 매일 만졌다.
아버지의 것이었다.
오전 아홉 시, 반장이 입고 예정표를 게시판에 붙였다. 채윤은 지나가는 길에 흘긋 봤다. 흘긋 보고, 지나치고, 세 걸음 만에 되돌아왔다.
동부 십칠 초소. 후송 인원 둘. 정비 의뢰, 등불 병기 일 자루. 도착 예정 십사 시.
소유주 — 한결.
스패너가 손에서 미끄러져 발등을 아슬아슬하게 비켜 갔다. 그녀는 스패너를 줍지도 않고 뛰었다. 정비창 정문까지 마흔 걸음을 열두 걸음쯤으로 줄여 철문을 밀어젖히자, 눈 덮인 빈 마당과 닫힌 위병소와, 담배를 말다 만 위병의 놀란 얼굴이 있었다.
"…뭐 왔어?"
"아니요."
"근데 왜 뛰어."
"몸이 식어서요."
도착은 십사 시였다. 지금은 아홉 시였다. 채윤은 최대한 천천히 걸어 돌아와 스패너를 주웠다. 그리고 오전 내내 아무렇지 않은 표정을 연습했다. 아무렇지 않은 표정은 연습하면 할수록 아무렇지 않지 않게 됐다.
◆
호송대는 십사 시 십 분에 들어왔다. 채윤은 십삼 시 오십 분부터 정문 옆에서 폐품 분류를 하고 있었다. 분류할 폐품은 어제 다 분류해 둔 것이었지만, 그건 그녀만 아는 사실이었다.
맨 앞에 들어선 것은 사람이 아니라 네 발이었다. 새끼 당나귀만 한 사족 보행기가 등에 부목 댄 어린 병사를 태우고 눈을 밟아 왔다. 도색은 다 벗겨졌고, 왼눈 렌즈에 금이 갔고, 네 다리의 관절이 전부 딴 부품이었다.
"의무실이 어느 쪽이냐." 사족이 물었다. 낡은 스피커를 한 번 거른 듯한 반말이었다.
"저쪽 초록 지붕. …너 관절이 사대가 다 다른 부품이네. 왼 뒷다리는 농기계 거고."
"눈썰미가 기분 나쁘다." 사족은 반 박자 쉬었다. "그리고 너한테서 윤활유 냄새가 난다. 오늘 처음으로 쓸모 있어 보이는 인간을 봤다."
그 뒤로 어깨에 붕대를 감은 일병이 걷고, 소총을 멘 일병 하나가 뒤를 봐 주며 들어왔다. 그리고 맨 뒤에, 그가 있었다.
이 년 만이었다. 얼굴이 좀 상했고, 눈매는 그대로였고, 등에는 검이 걸려 있었다.
채윤은 폐품 상자를 내려놓고, 손바닥을 작업복에 두 번 문질렀다. 그리고 걸어갔다. 뛰지 않았다. 그 걸음은 자연스러웠다. 능숙하게 자연스러웠다. 능숙해질 만큼 연습된 자연스러움이었다.
"어이, 동부." 그녀는 말했다. "길 잃었냐? 여긴 후방인데."
한결이 그녀를 봤다. 반 박자 늦게, 낯익은 무뚝뚝함이 왔다.
"…채윤."
"어, 나. 이 년 만에 소꿉친구 얼굴 보고 그게 다야? 잘 지냈냐, 보고 싶었다, 그런 건 배급 안 나오디?"
"…너 살 빠졌네."
"어머." 채윤은 눈을 크게 떴다. "얘가 늘었네. 사람 다 됐어."
호위하던 일병이 웃음을 참는 소리를 냈다. 서씨라고 했다. 서 일병의 등에 걸린 검이 걸걸한 중년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아가씨, 우리 막내 다리부터 좀. 사흘을 판초에 실려 다녔어."
"어르신 말씀이 맞네. 접수는 이따 하고, 사람부터."
부상자 둘이 의무실로 실려 가는 동안 채윤은 서류판을 들고 왔다. 정비 의뢰서의 비고란은 한 줄이었다. 전투 후 전반 점검.
"성의 없기는. 어디가 아픈지는 본인한테 물어볼게." 그녀는 한결의 등에서 검집째 검을 받아 들며, 검집에 대고 말했다. "안녕. 얘기 많이 들었… 는 건 아니고, 소문만 들었어. 나 채윤. 오늘 네 담당."
반 박자 있다가, 검이 대답했다.
"…온이야."
"이름 예쁘네." 채윤은 서류판에 적었다. 온. "성은?"
"몰라."
"쿨하다. 나도 성 떼고 살까."
"…"
"참, 나 쟤 소꿉친구다. 궁금한 거 있으면 나한테 물어. 아홉 살 때 얘기부터 다 되는데, 특히 아홉 살 겨울에 쟤가 이불에—"
"채윤." 한결이 말했다.
"왜. 영업 비밀이야?"
"…기록해 둘게." 온이 말했다.
"얘 봐라? 마음에 든다, 너."
한결이 뭐라고 하려다 마는 것이 곁눈에 보였다. 그녀는 그것도 못 본 척했다. 못 본 척은 정비사의 기본기였다. 검의 흠집이든, 사람의 흠집이든, 먼저 들이대지 않는 것.
"동부에 검을 일곱 번 퇴짜 놓은 돌대가리가 있다는 소문이 여기까지 왔었거든." 그녀는 앞장서 걸으며 말했다. "정비사들끼리 내기까지 붙었어. 걔가 결국 받나 안 받나. 이름까지 같길래 설마 했지." 그녀는 어깨 너머로 검집을 흔들어 보였다. "받았네?"
"…배속 명령이었어."
"어, 다들 그렇게 말해."
걸으면서 그녀는 물었다. "칠 번 중계탑이라며. 고쳤어? 동부 무전이 사흘째 잡음인 건 여기서도 알아."
"…못 고쳤어."
"덫이었구나."
한결이 그녀를 봤다. 채윤은 어깨를 으쓱했다. "탑이 죽으면 인간이 고치러 온다. 고전이잖아. 정비사들은 다 알아. 고치러 가는 게 우리라서."
◆
정비동 안은 난로와 절삭유 냄새였다. 채윤은 검을 정비대에 물리고, 한결에게는 탄약 상자를 밀어 줬다. 규정상 코어가 물린 장비의 분해 점검에는 소유주가 입회해야 했다. 규정이 고마운 날도 있었다.
사족은 어느새 정비동 구석까지 따라 들어와 있었다. 목 아래 태그가 보였다. 물류 보조 기체 미르 사 형. 소속, 말소.
"미르? 네가 걔구나. 십칠 초소에 구형이 하나 붙었다고 무전에 떴던데."
"붙은 게 아니라 계약이다. 기름 반 컵에 등 하나." 미르는 폐윤활유 드럼 옆에 엎드렸다. "이 건물, 십오 년 만에 맡아 보는 부자 냄새다. 반 컵만 다오."
"새 걸로 줄게. 폐유 먹으면 관절 나가."
"……" 미르의 금 간 렌즈가 그녀를 오래 봤다. "이 정비창, 마음에 든다."
채윤은 웃고, 일을 시작했다.
"온. 말 좀 해 봐. 보이스 모듈 상태 봐야 되니까, 아무거나."
"아무거나."
"……그거 농담이야?"
"시도였어."
채윤은 웃음을 터뜨렸다. "합격. 보이스 정상, 유머 모듈은 고장. 근데 그건 부품이 없어." 그녀는 파형 계측기의 집게를 물리며 덧붙였다. "목소리 좋다. 구세대 양육형 계열이지? 그 계열이 목소리 하나는 참 잘 뽑았어. 요즘 검 절반이 그쪽 모듈 물려받았을걸."
한결이 창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창밖에는 눈 쌓인 폐차 더미밖에 없었다. 뭘 보는지는 보이지 않았다.
검신은 멀쩡했다. 이 빠짐 없음, 뒤틀림 없음. 다만 그립의 토크 이력이 이상했다.
"온, 너 최근에 소유주 손목 꺾었지. 역방향 토크가 기록에 그대로 남았는데."
"응." 온은 바로 대답했다. "꺾었어."
"검이 소유주보다 먼저 움직였다고?" 채윤은 한결을 봤다. "너 그거 보고 안 올렸지."
"…살았으니까 됐어."
"됐긴 뭐가 돼. 그거 코어 부하가 얼만데—" 그녀는 하려던 잔소리를 반으로 접었다. 살았으니까, 라는 말을 이기는 잔소리는 없었다. "…잘했어, 온. 다음에도 꺾어."
"다시는 하지 말래." 온이 말했다.
"소유주 취급 수칙 제일조, 소유주 말을 다 듣지 말 것."
"그런 조항 없다." 한결이 말했다.
"내가 방금 만들었어. 정비사 권한으로."
라쳇을 내려놓을 때 벨트의 인식표가 정비대 모서리에 쟁그랑 부딪혔다. 한결의 눈이 잠깐 거기에 머무는 것을, 채윤은 못 본 척하지 못했다. 그래서 먼저 말했다. 목소리를 한 톤 올려서.
"아버지 거야. 정비공 등록 번호. 이거 요즘 골동품이다? 등록제 자체가 없어졌거든. 희소가치."
"……"
"야, 그 표정 뭐냐. 십오 년 됐어. 이제 만져도 안 뜨거워."
한결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가 말았다. 채윤은 그가 삼킨 말을 굳이 꺼내게 하지 않았다. 그 밤 얘기를 시작하면, 이 정비창에서 그 밤에 아무도 안 잃은 사람이 없다는 얘기까지 가야 했다. 그 얘기는 술 없이 하는 게 아니었고, 근무 중이었다.
대신 그녀는 사물함을 발로 툭 차서 열었다. 문 안쪽에 붙은 낡은 종이가 드러났다. 역전 상가 이 층 점포 임대, 문의는 아래 번호로.
"저건 뭐냐." 한결이 물었다.
"내 부동산." 채윤은 라쳇을 돌리며 말했다. "십오 년짜리 계획. 언젠가 군 마크 말고 내 이름 걸고 정비소 차릴 거야. 간판에 크게. 저 전단 삼 대째다? 상가가 두 번 무너졌거든. 상가는 무너지는데 계획은 안 무너져. 대단하지."
"…그 국번, 없어진 지 십 년이다."
"낭만을 몰라, 넌. 어릴 때부터."
"이름은 뭐라고 걸 건데."
"채윤 정비소."
"…더 생각해 봐."
"뭐가! 어디가!"
구석에서 미르가 낡은 환풍기 도는 소리로 웃었다. "간판은 짧을수록 좋다. 지워질 게 적잖아."
"너희 기계들은 꼭 그런 식으로 초를 치더라."
그때 정비동 문이 열리고 반장이 고개를 들이밀었다. "십칠 초소 인솔자! 행정반에서 찾는다. 후송 서류에 도장."
한결이 일어섰다. 문가에서 그는 반 박자 멈추고 정비대 쪽을 한 번 돌아봤다. 검을 쇳덩이 취급하는 소유주라고 소문이 났던 남자가, 쇳덩이를 두고 나가는 사람의 얼굴이 아니었다. 채윤은 그것을 서류판 뒤에서 봤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
그립 분해는 나사부터였다. 첫째, 둘째. 셋째에서 드라이버가 헛돌았다.
"어?"
산이 반대였다. 왼나사. 부러진 나사를 뽑아내고, 거꾸로 깎아서, 다시 박은 것이다. 야전에서, 있는 공구로, 급하게.
"어떤 얼치기가 나사를 거꾸로… 아니다." 그녀는 드라이버를 고쳐 쥐었다. "얼치기 아니네. 이건 그날 밤 안으로 검을 살려야 했던 손이다. 넷째 소유주?"
"…응." 온이 말했다.
"너 소유주 몇이었어?"
"한결이 다섯째야."
"앞의 넷은?"
반 박자.
"기록이 짧아."
채윤은 더 묻지 않았다. 정비창에서 오래 일하면 배우게 되는 것이 있었다. 검의 짧은 기록은 대개 사람의 짧은 명줄이라는 것. 그녀는 왼나사를 왼쪽으로 살살 달래서 풀고, 나사받이의 녹을 털었다.
그러다 손끝이 멈췄다.
그립 외장. 쥐면 손등이 닿는 자리의 패널. 그것이 순정 부품이 아니었다.
"…이 외장, 원래 네 거 아니지?"
"몰라." 온이 말했다. "처음부터 이랬어."
규격이 미묘하게 달랐다. 다른 어딘가에서 떼어 낸 패널을, 누가 손으로 깎고 다듬어서 그립 곡면에 딱 맞게 붙인 것이다. 접합선은 머리카락만큼 가늘었고, 십오 년은 되어 보이는 이음매가 아직도 물 샐 틈이 없었다.
"솜씨 좋다." 채윤은 저도 모르게 중얼거렸다. "기계로 깎은 게 아니야. 손으로 맞춘 거야, 이거. 좋은 손이 지나간 물건은 티가 나거든. …우리 아빠 입버릇이었는데."
"뭐가?"
"방금 그 말. 좋은 손이 지나간 물건은 티가 난다."
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미르의 냉각팬 도는 소리만 낮게 이어졌다.
불빛을 비스듬히 낮췄을 때였다. 접합선을 따라가던 그녀의 눈이 이음매 틈에서 멈췄다. 틈 안쪽, 외장 안면으로 이어지는 자리에 무언가 있었다.
"…이거 봐라?"
파인 골이었다. 때도 아니고 그을음도 아니었다. 걸레로 문지르고, 용제를 묻혀 다시 문지르고, 손톱 끝으로 긁어 봐도 그대로였다. 파인 것이다. 도장 밑의 금속까지. 날붙이도, 공구 자국도 아니었다. 못 같은 것으로, 꾹꾹 눌러서.
틈으로 보이는 것은 끝자락뿐이었다. 가는 선 두엇이 틈 밑으로 비스듬히 숨어 들어갔다. 무늬인지, 글자인지, 애들 낙서인지. 선 하나는 끝이 조금 삐뚤었다. 힘 조절이 서툰 손이 그은 것처럼.
"온. 너 몸에 낙서 있는 거 알았어?"
검은 대답하지 않았다.
"문지르는 거 간지러워?"
"…아니." 반 박자. "모르겠어."
"모르겠대." 미르가 구석에서 말했다. "요즘 검은 다 그렇게 대답하더라."
원인 불명은 정비사가 제일 싫어하는 말이었다. 채윤은 작업등을 끌어당기고, 드라이버를 첫째 나사에 물렸다. 외장을 벗기면 안면이 보인다. 낙서든 뭐든, 십 분이면 정체가 나온다.
드라이버가 반 바퀴를 돌기 전에, 사이렌이 울렸다.
◆
그녀의 손이 멈췄다.
머리보다 먼저 몸이 굳었다. 사이렌은 언제나 그녀를 열한 살로 되돌렸다. 현관 문턱, 쟁반 위에서 식어 가던 보리차 두 잔, 아버지 몫으로 챙겨 놓고 끝내 못 건넨 장갑. 그 기억의 다음 순서는 정해져 있었고, 그녀는 그 순서를 십오 년 동안 한 번도 바꾸지 못했다.
"공습경보! 등화관제! 전원 대피호로!"
반장의 고함이 복도를 굴러왔다. 작업등이 일제히 죽고, 정비동이 어두워졌다. 채윤은 숨을 한 번 크게 쉬고, 몸을 움직였다. 코어 물린 장비는 두고 가지 않는다. 그것도 규정이었고, 규정이 아니어도 그럴 참이었다.
그녀는 정비대에서 검을 뽑아 안고 뛰었다. 복도 중간에서 마주 뛰어오는 사람과 부딪힐 뻔했다.
한결이었다. 행정반은 대피호 바로 옆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피호 반대쪽으로, 정비동 쪽으로 달려오고 있었다.
"네 검." 그녀가 검집을 내밀었다.
한결은 받아 안았다. 고맙다는 말은 없었다. 다만 받아 안는 팔이, 쇳덩이를 받는 팔이 아니었다.
대피호는 정비동 지하였다. 콘크리트 계단, 백열전구 하나, 기름 드럼과 사람들. 미르까지 비집고 들어와서 자리가 좁았다. 어둠 속에서 사이렌이 벽을 타고 웅웅거렸다.
채윤은 떠들기 시작했다.
"야, 우리 대피호 명당인 거 알아? 위가 정비동이잖아. 무너져도 부품이 쏟아지지, 돌이 쏟아지냐. 재수 좋으면 라쳇 새 걸로 하나 줍고."
"떨어지면 다 같이 눌린다." 미르가 말했다.
"넌 좀 조용히 해."
"떠드는 건 너다."
떠드는 건 그녀였다. 알고 있었다. 사이렌 밑에서 입을 다물면, 열한 살의 현관이 올라왔다.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일에는 요령도 연습도 소용이 없었다. 그래서 그녀는 시끄러워지는 쪽을 골랐다. 오래전에 골라서, 이제는 고른 줄도 몰랐다.
"고도 구천." 검이 말했다. 조용한, 이상하게 방 전체에 고루 닿는 크기였다. "폭장 무게가 아니야. 엔진음이 가벼워. 정찰 편대야. 지나가는 길이고. …여기엔 아무것도 안 떨어져."
대피호가 조금 느슨해졌다. 누군가 참았던 숨을 내쉬었다.
"…확실해?" 채윤이 물었다.
"응. 소리는 거짓말 안 해."
"몇 대야?"
"여섯." 반 박자. "다섯. …넷. 멀어지고 있어. 셀까?"
"세 줘."
온은 세어 줬다. 셋, 둘. 사이렌 밑에서 숫자를 세어 주는 목소리를 들으며, 채윤은 이상하게 어깨가 내려가는 것을 느꼈다. 하나. 그리고, 없어. 검이 말했고, 정말로 잠시 뒤에 벽의 웅웅거림이 가라앉았다.
고장은 거짓말을 안 한다, 사람이 하지. 아버지의 일지 첫 장에 있던 문장과 반쯤 닮은 말이었다. 채윤은 어둠 속에서 저도 모르게 벨트의 인식표를 쥐고 있는 제 손을 발견했다. 놋쇠는 손안에서 미지근해져 있었다.
전구 불빛에 한결의 옆얼굴이 보였다. 그는 검집을 무릎에 세워 안고 있었다. 두 팔로. 잠든 것을 깨우지 않으려는 자세와 비슷했다. 검을 일곱 번 퇴짜 놓은 남자의 소문과, 지금 저 팔의 각도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채윤은 알지 못했다. 다만 그 각도가 낯익었다. 어디서 봤는지는 생각나지 않았다.
사이렌은 이십 분을 울고 멎었다.
◆
해제 방송이 나오고 삼십 분 뒤에 무전이 왔다. 동부 전선 재개. 십칠 초소 인원, 여명 복귀. 장비 반출은 금일 중.
"외장은?" 반장이 물었다.
"못 깠어요. 경보 때문에." 채윤은 반출 서류에 도장을 찍으며 말했다. "야간 분해는 규정 위반이고, 새벽 출발이면 시간이 없네."
"다음 입고 때 봐."
다음 입고 때. 정비창에서 그 말은 절반쯤 기도였다. 다음 입고가 있으려면, 검도 소유주도 그때까지 살아 있어야 했다.
저녁 어스름에 그녀는 검을 돌려줬다. 정비동 앞, 눈이 다시 얇게 내리고 있었다.
"검신 이상 무. 코어 이상 무. 보이스 정상. 유머 고장." 그녀는 손가락을 꼽았다. "그리고 그립 외장 이음매에 원인 불명 각인 하나. 다음에 오면 그거 내가 깐다. 예약이야."
"…응." 온이 말했다. "예약."
"미르 너는."
"기름 인심 후한 인간은 기억해 둔다." 미르는 등의 썰매 끈을 고쳐 걸었다. "너는 두 번째로 기억되는 인간이다. 영광인 줄 알아라."
"첫 번째는 누군데."
"기름 통째로 주고 간 인간. 십이 년 전에. 죽었지만."
"…너희 기계들은 꼭 그런 식으로 말을 끝내더라."
한결이 검을 등에 걸었다. 채윤은 그의 어깨끈을 붙잡아 반 뼘 고쳐 줬다. 오지랖의 각도까지 완벽하게, 연습된 자연스러움으로.
"잘 가라. 죽지 말고. 검 말 들어."
"…노력한다."
"노력 말고."
잘 가라는 말 뒤에 붙이고 싶은 말이 하나 더 있었다. 그러나 그것은 접수도 반출도 안 되는 품목이었고, 채윤은 그것을 십 년째 창고에 두고 있었다. 창고 정리는 정비사가 제일 미루는 일이었다.
한결은 대답 대신 고개를 한 번 끄덕였다. 그게 그의 최대치라는 것을 그녀는 열 몇 살 때부터 알았다. 걸어가는 등 뒤에서 검집이 흔들렸고, 눈발 사이로 온의 목소리가 반 박자 늦게 닿았다.
"고마워, 채윤."
이름을 불러 주는 검은 처음이었다. 채윤은 손을 흔들었다. 흔들면서, 저 목소리를 어디서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을 잠깐 했고, 요즘 검 절반이 그 계열이지, 하는 생각으로 덮었다. 덮는 데는 일 초도 걸리지 않았다.
◆
밤. 정비동에는 그녀 혼자 남았다.
작업대 아래에는 아버지의 공구함이 있었다. 잠긴 채로 십오 년. 열쇠도 번호도 없이 그 밤에서 넘어와, 이제는 그녀의 발받침 노릇을 했다. 채윤은 그 위에 발을 얹고, 정비 일지를 폈다. 표지가 기름에 전 노트. 양식은 아버지가 쓰던 것을 그대로 물려 썼다. 정비사는 손으로 고치고 일지로 남긴다. 손은 먼저 가도, 일지는 남는다고 했다.
날짜를 적고, 기체명을 적었다. 등불 병기, 온. 검신 이상 무. 코어 이상 무.
펜이 그다음 줄 앞에서 잠깐 섰다. 이음매 틈의 그 파인 골. 삐뚠 선 끝. 문질러도 지워지지 않던.
그녀는 적었다.
— 그립 외장, 원인 불명 각인. 재점검 요망.
'요망' 뒤에서 펜 끝이 조금 머물렀다. 십 분이면 깔 수 있었는데. 그녀는 다음 입고 때, 라고 속으로 한 번 더 예약을 걸고 일지를 덮었다.
그 줄을 다시 펼쳐 볼 일은, 아주 오랫동안 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