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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장 「별 낙서」 — 반전 1단: 발각

외장은 생각보다 쉽게 벗겨졌다.

이미 금이 가 있어서였다. 이음매를 따라 손끝을 밀어 넣으니, 손으로 깎아 맞춘 조각이 딱 소리를 내며 들렸다. 오래 붙어 있던 것이 떨어질 때 나는 소리였다.

한결은 그 조각을 등불 아래로 가져갔다.

안쪽은 어두웠다. 그을음이 묻어 있었다. 낮의 포화가 남긴 자국.

그는 조각을 뒤집었다가, 다시 검을 봤다. 외장이 벗겨진 자리. 그립의 맨 속살.

거기에 뭔가 있었다.

처음엔 흠집인 줄 알았다.

포탄에 긁힌 자국. 그런 줄 알고 손끝으로 문질렀다. 걸레로 문지르면 지워질 거라고, 그렇게 생각하는 손이었다.

지워지지 않았다.

문질러도 그대로였다. 파여 있었으니까. 표면에 묻은 게 아니라, 안으로 새겨져 있었으니까.

그는 등불을 조금 더 끌어당겼다.

선이었다. 짧은 선 여럿이 한 점에서 뻗어 나간.

별이었다.

한결은 손을 멈췄다.

숨이 멎었다. 정확히는, 숨을 어떻게 쉬어야 하는지 잠깐 잊었다.

별.

못으로 그은 별. 삐뚤빼뚤한. 꼭짓점이 다 채워지지 않아 별이 되다 만. 아이가 그은 별.

그는 그 별을 알았다.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별이었으니까. 그가 그었으니까.

아홉 살이었다.

부엌 서랍에서 못을 하나 꺼냈다. 굵고 짧은 못. 온이 액자를 걸 때 쓰던 것.

온은 소파에 앉아 있었다. 아이가 무릎에 올라와 손등을 만지작거려도 가만히 있었다. 온의 손은 따뜻했다. 사람 손보다 조금 더. 열이 안쪽에서 도는 손이었다.

여기 별 그려도 돼?

온이 뭐라고 대답했더라.

기억이 났다. 십오 년 만에, 그 대답이 통째로 났다.

그건 안 지워지는데.

곤란한 목소리였다. 화난 게 아니라, 정말로 곤란한. 안 지워진다는 걸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까 고민하는 목소리.

아이는 그게 뭐가 문제인지 몰랐다. 안 지워지면 좋은 거 아닌가. 계속 있는 거잖아. 그래서 그었다. 못 끝으로, 손등 패널에. 힘을 줘서. 별 하나.

온은 아이의 손을 잡지 않았다. 그으라고 손등을 내어 준 채로 있었다.

다 긋고 나서 아이가 물었다.

이제 안 지워져?

응. 온이 말했다. 안 지워져.

그럼 이제 너 계속 나야?

아홉 살의 문장은 앞뒤가 안 맞았다. 그런데 온은 그 말을 알아들었던 것 같다. 반 박자 뒤에 대답했으니까.

…응. 계속 너야.

한결은 검을 놓쳤다.

작업대 위로 떨어졌다. 쨍, 하는 소리가 정비고 안에 크게 울렸다.

계측기 집게가 튕겨 나갔다. 바늘이 흔들렸다.

그는 떨어진 검을 보고만 있었다. 주울 생각을 못 했다. 손이 말을 안 들었다.

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가 났다. 아주 멀리서 나는 것 같았다.

이 검이.

이 검이, 그 온이다.

십오 년.

그가 밤마다 갈아 온 게 있었다. 원망이라고 부르기도 했고, 그냥 딱딱한 돌덩이라고 여긴 적도 있었다. 명치 어디에 박혀서, 숨을 깊이 쉬면 걸리던 것.

그걸 갈고 또 갈았다. 잠이 안 오는 밤마다. 훈련소에서. 참호에서. 병원에서. 온을 미워하는 게 온을 그리워하는 것보다 쉬웠다. 미워하려면 상대가 나를 버렸다고 믿어야 했고, 그는 그걸 믿는 편을 골랐다. 그 편이 숨쉬기 쉬웠으니까.

그 믿음이 이 별 하나에 걸려 넘어졌다.

버린 사람이 있고 버려진 아이가 있다. 그 구도 하나로 밤들을 건넜다. 아무도 믿지 않으면 두 번 다시 잃을 일도 없다는 것—그게 그가 배운 전부였다.

그런데 그 원망이, 지금 갈 곳을 잃었다.

돌덩이가 명치에서 빠져 버렸는데, 빠진 자리가 더 아팠다. 뭔가로 채워져 있던 자리가 뻥 뚫린 게 이런 느낌이구나. 그는 처음 알았다.

버린 게 아니었나.

아니, 아직 모른다. 별이 여기 있다고 해서 버리지 않았다는 뜻은 아니다. 별이 여기 있다는 건, 이 검이 온이라는 뜻일 뿐이다.

그 뜻 하나가 이렇게 무거웠다.

그는 검을 다시 주웠다.

떨어뜨린 게 미안해서, 그런 마음이 먼저 들었다. 미안한 마음이 든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열이레 전만 해도 이 검을 거부하던 손이었는데.

그립을 쥐었다.

손바닥에 별이 닿았다. 외장을 벗긴 자리라 맨 속살이 손에 닿았다. 못 자국이 손금에 걸렸다.

쥔 손이 저절로 오그라들었다.

그는 걸상에 다시 앉았다. 검을 무릎에 놓았다. 별이 위로 오게.

별을 오래 봤다.

새벽이 오는 걸 몸으로 알았다.

창밖이 밝아진 건 아니었다. 다만 난로의 불이 사그라들었고, 밤의 공기가 한 겹 더 차가워졌다. 새벽이 가장 추운 시간이라는 걸, 전장에서 배웠다.

한결은 밤새 한숨도 자지 못했다.

잘 수가 없었다. 눈을 감으면 아홉 살의 소파가 나왔다. 눈을 뜨면 무릎 위의 별이 있었다.

그는 별을 손끝으로 자꾸 만졌다. 없어질까 봐 만졌고, 만지고 나면 아직 있다는 게 손끝에 남았다.

수십 번쯤 만졌을 때.

무릎 위에서, 검이 아주 낮게 떨렸다.

한결은 굳었다.

절전에서 깨어날 때 나는 진동이었다. 열이레를 함께한 몸은 그것을 알았다. 회로가 하나씩 다시 켜지는 소리. 낮은 데서부터 올라오는 미열.

그는 별에서 손을 뗐다.

떼고 나서, 왜 뗐지 싶었다. 들킬 게 있는 사람처럼 뗐다. 실제로 들킬 게 있었다. 밤새 뭘 봤는지, 뭘 알았는지.

검의 온도가 손바닥에서 조금씩 올라왔다.

"…한결?"

목소리였다.

열이레 전에 죽은 목소리. 아니, 죽지 않은 목소리. 지금 그의 무릎 위에서 다시 켜지는 목소리.

"…나 얼마나 잤어?"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목이 막혔다.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몰라서가 아니라, 소리가 안 나와서였다. 밤새 삼킨 것이 목에 걸려 있었다.

"한결?" 온이 다시 불렀다. 목소리가 아직 좀 갈라져 있었다. 절전에서 막 깬 목소리. "거기 있어?"

"…어." 그는 겨우 말했다. "있어."

"다행이다." 온이 말했다. 진짜로 다행이라는 목소리였다. "꿈 꾼 것 같았는데. 아니, 꿈은 아니고. 뭐랄까, 캄캄한 데 있었어. 아무것도 없는 데. 그런데 네 목소리가 들렸어. 계속. 두 번씩."

한결의 심장이 한 번 크게 뛰었다.

"…뭐가 두 번씩."

"네가 하던 말. 두 번씩 했잖아. 협곡은 눈이 늦게 녹는다고. 위기에서 왼쪽으로 구르라고. 그거 내가 한 말인데. 네가 나한테 돌려주더라. 캄캄한 데서 들었어."

들었구나.

한결은 눈을 한 번 감았다. 산길에서 대답 없는 검에게 대고 중얼거리던 말들. 두 번 말해도 되는 것들. 그걸 들었다고 지금 이 검이 말하고 있었다.

"…들었으면서 대답을 안 해."

"못 한 거지." 온이 말했다. 조금 웃는 것 같았다. "코어만 겨우 켜 놓고 나머지 다 껐는데 어떻게 대답을 해. 그래도 들리긴 하더라. 신기하지."

한결은 검을 봤다.

우그러든 검신. 갈라진 그립. 그가 밤새 벗겨 낸 외장 자리. 그리고 별.

온은 자기 손등에 별이 드러난 걸 몰랐다. 자기가 온인 걸 몰랐다. 십오 년 전에 아홉 살 아이를 벽장에 숨긴 걸 몰랐다. "금방 올게"라고 말하고 걸어 나간 걸 몰랐다.

아무것도 모르는 목소리로, 온이 물었다.

"근데 너 왜 그래?"

"…뭐가."

"목소리." 온이 말했다. "너 아플 때 목소리, 그렇게 나. 어디 다쳤어? 밤새 안 잤어?"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이 검은 그의 목소리로 아픔을 읽었다. 열이레 전부터, 아니— 십오 년 전부터. 아홉 살 아이가 열이 오르면 알아챘을 것이다. 건빵을 왼쪽 어금니로 깨무는 걸 알았고, 잠들기 전에 세 번 뒤척이는 걸 알았다. 오래 본 사람만 아는 것들이었다.

그 손이 기억하고 있었다. 지워진 건 기억뿐이고, 손은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한결." 온이 재촉했다. "어디 다쳤냐고."

말할까.

한결은 처음으로 그 생각을 했다. 지금 말할까. 너는 온이라고. 나를 키운 온이라고. 손등에 내가 그은 별이 있다고. 십오 년 전에 나를 벽장에 숨긴 게 너라고.

입을 반쯤 열었다.

그러다, 멈췄다.

말하면 어떻게 되지.

기억이 없는 그녀에게. 아무것도 모르는 그녀에게. "너는 나를 키운 기계야"라고 말하면— 아니, "너는 나를 버린 기계야"라고 그녀가 먼저 알아들으면.

무엇이 부서질지 알 수 없었다.

이 검이 지금 편안한가. 아니다. 편안한 건 아니다. 그런데 적어도 지금은 자기가 누군지 모르는 채로, 캄캄한 데서 그의 목소리를 듣고 다행이라고 말하는 검이다. 그 다행을 깨뜨리면.

그다음이 없었다. 그 뒤가 상상이 안 됐다. 상상이 안 되는 게 무서웠다.

십오 년 동안 무엇이 계속되기를 바라지 않는 법으로 살았다. 그런데 지금은 바랐다. 이 검이 계속 검이기를. 계속 온이기를. 모르는 채의 온이기를. 명치에서 그 바람들이 서로를 밀었다.

"…안 다쳤어." 그는 말했다.

목소리가 낮았다. 온이 아픔을 읽는다는 그 목소리로. 그런데 이번엔 다른 걸 감추는 목소리였다.

"거짓말." 온이 바로 말했다.

"…아니야."

"거짓말." 온이 또 말했다. "너 지금, 협곡에서 다쳤을 때보다 목소리가 더 아파. 훨씬. 그때는 어깨였는데. 지금은 어디야?"

한결은 별을 봤다.

무릎 위에서, 못으로 그은 별이 등불을 받아 희미하게 반짝였다.

"…아무 데도 안 다쳤어." 그가 말했다. "진짜야."

"그럼 왜—"

"밤을 새워서 그래." 그는 말을 잘랐다. "네가 안 깨서. 걱정돼서 못 잤어. 그것뿐이야."

절반은 사실이었다. 걱정돼서 못 잔 건 사실이었다. 그런데 그가 방금, 나머지 절반을 삼켰다는 걸 그도 알았다.

검에게 거짓말을 했다.

처음이었다. 이 검에게 거짓말을 한 건, 처음이었다.

온은 잠시 조용했다.

반 박자. 아니, 그보다 길었다. 절전에서 막 깬 온의 판단은 조금 느렸다. 아니면, 무언가를 재는 중이었는지도 몰랐다.

"…그래." 이윽고 온이 말했다. "걱정 끼쳐서 미안."

한결은 그 "미안"에 바로 대꾸하지 못했다.

이 검은 자꾸 미안하다고 했다. 협곡에서 절전에 들어갈 때도. 지금도. 자기가 방패로 몸을 던졌으면서, 자기가 부서졌으면서, 걱정 끼쳐서 미안하다고 했다.

아이를 숨기고 걸어 나가면서도, 곤란한 목소리로 별은 안 지워진다고 말하던 손이.

그는 그 생각을 밀어냈다. 지금 그걸 떠올리면 목소리가 무너질 것 같았다.

"안 미안해도 돼." 그가 겨우 말했다. "네가 날 살렸잖아."

"그건 그냥—"

"몸이 먼저 움직였어. 이상하지." 한결이 온의 말을 가로챘다. 온이 늘 하던 대답이었다. "그 말 하려던 거잖아."

검집 속에서, 짧은 웃음 같은 게 났다.

"…어떻게 알았어."

"오래 봤으니까."

말해 놓고, 한결은 아차 했다.

그건 온이 그에게 하던 말이었다. 넌 꼭 나를 오래 본 사람처럼 굴어, 라고 물으면 온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그 말을 그가 온에게 했다. 오래 봤으니까, 라고.

이번엔 그가 오래 본 사람이었다. 열이레가 아니라, 그가 태어난 날부터 아홉 살까지 전부. 두 사람은 서로를 오래 봤다. 그런데 그걸 아는 건 지금 그 하나뿐이었다.

"오래 봤다니." 온이 말했다. 목소리에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열이레밖에 안 됐잖아. 우리."

"…비유야."

"인간은 비유를 이상하게 써." 온이 말했다. "열이레를 오래 봤다고 하고. 오 분 늦은 걸 한참이라고 하고. 시간을 자꾸 늘렸다 줄였다 해."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온의 말이 맞아서였다. 그는 지금 시간을 늘리고 있었다. 열이레를 십오 년으로. 아니, 원래 그만큼이었던 걸 열이레인 척하고 있었다. 온만 그걸 몰랐다.

"채윤 깨울까." 그는 화제를 돌렸다. "너 깨면 깨워 달랬어. 인사한다고."

"채윤한테는 인사 안 해도 되는데."

"왜."

"채윤은 내가 안 깨도 계속 왔을 거야. 정비하러. 근데 넌—" 온이 말을 멈췄다. 반 박자. "넌 밤새 옆에 있었잖아. 그건 다른 거지."

한결은 검을 무릎에서 조금 들어 올렸다.

별이 등불 아래로 왔다.

이걸 보라고. 이 별을 좀 보라고. 네 손등에 있던 별이라고. 목까지 그 말이 올라왔다.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대신 그는 검을 작업대에 눕혔다. 별이 아래로 가게. 온이— 아니, 채윤이 보지 못하게. 지금은 아직.

"채윤 부를게." 그가 말했다. "잠깐만 있어."

"…한결."

"응."

"진짜 아무 데도 안 다친 거지?"

한결은 문고리를 잡은 채 멈췄다.

등 뒤에서, 검이 그를 부르고 있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목소리로. 십오 년 전에 그를 살리려고 걸어 나간 목소리로. 지금 그를 걱정하는 목소리로.

"…안 다쳤어." 그는 등을 돌린 채로 말했다.

두 번째 거짓말이었다.

문을 열자 새벽 공기가 들어왔다.

밖은 아직 어두웠다. 동쪽 하늘 끝에만 색이 옅게 번지고 있었다. 초소 마당에 서리가 내려 있었다. 밟으면 자국이 남는 서리.

한결은 마당 한복판에 서서, 숨을 크게 한 번 쉬었다.

차가운 공기가 폐를 찔렀다. 그 통증이 오히려 나았다. 몸이 아픈 건 견딜 만했다. 아까 정비고 안의 것에 비하면.

그는 별을 본 손을 폈다 쥐었다.

손금에 못 자국이 아직 걸려 있는 것 같았다. 실제로는 없었다. 별은 검에 있고, 그의 손에는 없었다. 그런데 자꾸 있는 것 같았다.

이제 안 지워져?

응. 안 지워져.

아홉 살의 문답이 다시 왔다. 온의 말이 맞았다. 안 지워졌다. 소등의 밤을 건너도, 검이 되어서도. 별은 그대로 있었다.

지워진 건 그 별을 새겨 준 사람의 기억뿐이었다. 손도, 마음도 남아 있는데, 그 손의 주인만 자기 손등에 뭐가 있는지 몰랐다.

숙소 쪽으로 걸었다.

채윤을 깨우러 가는 걸음이었다. 그런데 걸음이 자꾸 느려졌다. 채윤을 어떻게 보나. 채윤에게는 뭐라고 하나.

채윤은 안 된다.

그 생각이 걸음을 멈추게 했다. 채윤에게는 지금 말하면 안 된다. 채윤이 뭘 아는지 모르니까. 채윤의 아버지가— 그날 밤 정비창으로 나갔다는 채윤의 아버지가, 이 검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그는 몰랐다. 아무 상관 없을 수도 있었다. 그런데 어쩐지, 아무 상관 없지 않을 것 같았다.

채윤의 공구벨트에 걸린 인식표. 정비창 벽의 임대 전단. 그립 외장을 손으로 깎아 맞춘 자리.

그것들이 한 줄로 꿰어질 것 같은 예감이 있었다. 꿰어지면 뭐가 나올지는 몰랐다. 모르는 채로, 아는 것만은 분명한. 온이 자주 하던 그 느낌.

그는 숙소 문 앞에서 멈췄다.

안에서 채윤의 숨소리가 들렸다. 얕은 잠이었다. 문 하나 두드리면 깰 잠.

깨워서 뭐라고 하지. 온 깼다고, 그것만 말하면 채윤은 뛰어올 거였다. 그리고 별을 볼 거였다. 정비사의 눈으로. 손으로 깎아 맞춘 그립을 아는 눈으로.

채윤이 별을 보면 무슨 표정을 지을지, 한결은 알 수 없었다. 알 수 없어서, 아직은 안 되겠다 싶었다.

문을 두드리려던 손을 내렸다.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아무에게도.

미안해, 채윤. 그는 속으로 그렇게 말했다. 나 지금, 너한테도 거짓말을 하려고 해.

정비고로 돌아왔다.

문을 열자 온이 먼저 알았다.

"…채윤은?"

"…자게 뒀어." 그가 말했다. 세 번째 거짓말이었는지, 그냥 미룬 것인지, 그도 헷갈렸다. "피곤해 보여서. 좀 있다 깨우려고."

"그래." 온이 말했다. 별 의심 없이. "잘했어. 채윤 요새 잠 못 잤어. 너 걱정돼서."

한결은 걸상에 다시 앉았다.

검을 무릎으로 가져오지는 않았다. 작업대 위에 눕혀 둔 채로, 별이 아래로 가게 둔 채로. 그냥 옆에 앉았다.

난로에 나무를 하나 더 넣었다. 불이 다시 살아났다.

"한결." 온이 불렀다.

"응."

"아까부터 물어보고 싶었는데."

한결의 손이 멈췄다. 부지깽이를 쥔 손이.

"…뭘."

"너 왜 그런 눈으로 봐?"

한결은 부지깽이를 놓쳤다.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그는 그것을 줍지 않았다.

"…무슨 눈."

"모르겠어. 그냥." 온이 말했다. 절전에서 깬 뒤로 온의 감각은 조금 무뎌져 있었는데, 그래도 이건 읽은 모양이었다. "네 시선이 자꾸 나한테 오래 머물러. 아까 깼을 때부터. 검을 보는 눈이 아니야. 뭔가… 사람을 보는 눈 같아. 오래 못 본 사람."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온은 그를 볼 수 없었다. 시각 센서가 어디에 붙어 있든, 작업대 위에서 자기를 내려다보는 남자의 얼굴을 볼 수는 없었다. 그런데도 읽어 냈다. 오래 못 본 사람을 보는 눈이라고. 읽은 대로였다. 십오 년 만이었으니까.

"왜 그런 눈으로 봐." 온이 다시 물었다. "무슨 일 있었어? 내가 자는 동안."

말할까.

목까지 다시 올라왔다. 지금이라면. 지금 말하면. 네가 자는 동안 나는 이 외장을 벗겼고, 그 안에서 별을 봤고, 그 별은 아홉 살의 내가 네 손등에 그은 거라고. 그러니까 너는—

너는 나를 키운 온이라고.

한결은 입을 열었다.

그리고 닫았다.

"…아무 일도 없었어."

그는 말했다.

목소리가 이번엔 흔들리지 않게 조심했다. 온이 읽지 못하게. 처음으로, 온에게 들키지 않으려고 목소리를 골랐다.

"그냥 오래 안 깨서, 못 보던 얼굴 오랜만에 보는 것 같았나 봐." 그가 말했다. "열이레 만에 죽는 줄 알았으니까. 그래서 오래 보인 거야."

"…그런가." 온이 말했다.

믿는 목소리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다. 온은 더 캐묻지 않았다. 대신 조용히 덧붙였다.

"이상하다. 검인 나를 사람 보듯 봐 주는 게."

한결은 그 말에 목이 막혔다.

온은 자기가 사람이었던 걸 몰랐다. 검이 되기 전에 사람 형상의 몸이 있었던 걸. 아홉 살 아이를 안아 올리던 팔이 있었고, 액자를 걸던 손이 있었고, 별을 그으라고 내어 준 손등이 있었던 걸.

검인 나를 사람 보듯 봐 준다고, 온은 말했다. 고맙다는 뜻이 섞인 목소리로.

한결은 검을 봤다.

작업대 위의 검을. 별이 아래로 숨은 검을. 아무것도 모르는 검을.

그리고 처음으로, 이 거짓말을 얼마나 오래 해야 할지 생각했다.

동이 텄다.

정비고 창으로 옅은 빛이 들어왔다. 서리가 녹기 시작하는 빛. 새벽이 가장 춥고, 그다음에 오는 빛.

한결은 밤을 꼬박 새웠다. 손끝이 시렸다. 눈이 뻑뻑했다.

온이 무언가 말하려다 말았다.

"…왜." 한결이 물었다.

"아니야." 온이 말했다. "그냥— 고마워서. 밤새 옆에 있어 줘서."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고맙다는 말을, 그가 받을 자격이 있는지 몰랐다. 그는 밤새 옆에 있으면서, 이 검의 손등을 벗겼고, 이 검이 누구인지 알았고, 그러고도 아무것도 모르는 척 앉아 있는 사람이었다.

"온."

"응."

그는 별을 다시 볼까 하다가, 참았다.

대신 이렇게만 말했다.

"…아무것도 아니야. 자."

"방금 깼는데."

"그럼 깨어 있어."

온이 짧게 웃었다. 절전에서 완전히 돌아온 웃음이었다.

한결은 그 웃음소리를 오래 들었다.

십오 년 전에 죽은 줄 알았던 목소리가, 지금 그의 옆에서 웃고 있었다. 자기가 누구인지 모르는 채로. 자기 손등의 별을 모르는 채로. 그를 키운 걸 모르는 채로.

이제 나만 알았다.

동쪽 하늘이 밝아 왔다.

한결은 검을 향해, 처음으로 거짓말을 한 사람의 얼굴로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