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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필로그 「금방 올게」 (2047년)

아침에 국이 끓었다.

한결은 그 냄새로 눈을 떴다. 된장 냄새. 어딘가 탄 냄새도 섞였다. 그는 잠깐 천장을 봤다. 낯선 천장이었다. 아직도 낯설었다. 정비소 이 층, 침대 하나 겨우 들어가는 방. 두 번의 겨울을 여기서 났는데도 아침마다 천장이 낯설었다.

낯선 게 나쁘지 않았다.

아래층에서 소리가 났다. 뭔가 달그락거리고, 뭔가 떨어지고, 그리고.

"아, 또 태웠어."

온의 목소리였다.

한결은 눈을 감았다. 그 목소리를 조금 더 들었다. 검에서 나오던 목소리가 아니었다. 이제는 부엌에서, 사람 키만 한 높이에서, 냄비 앞에서 나는 목소리였다.

"태웠으면 새로 끓여."

미르였다.

"새로 끓이면 시간이 없잖아. 심부름 가야 하는데."

"그러니까 왜 매번 태우냐고. 불을 봐가면서 해야지. 검으로 산 세월이 얼만데 불은 볼 줄 알아야 할 거 아냐."

"검일 때는 불 볼 일이 없었어."

"핑계는."

한결은 웃었다. 천장을 보고 누운 채로.

내려가 보니 부엌이 엉망이었다.

온이 냄비 앞에 서 있었다. 등을 보이고. 어깨가 조금 굽었다. 새로 만든 몸이라 아직 관절이 뻑뻑한 모양이었다. 채윤이 밤새 붙어서 조립한 몸. 하룻밤짜리가 아니라, 오래가는 걸로.

어깨선이 어딘가 어설펐다. 왼쪽이 아주 조금 높았다. 채윤이 "이건 다음에 고칠게"라고 했던 자리였다.

한결은 그 어깨를 봤다.

십오 년 전, 벽장 틈으로 봤던 뒷모습이 겹쳤다. 그때도 온은 등을 보이고 있었다. 그때는 걸어 나가는 등이었다. 지금은 냄비 앞이었다.

"왔어?" 온이 돌아보지 않고 말했다.

"어떻게 알았어."

"발소리." 온이 말했다. "왼발을 조금 끌잖아. 너."

"안 끄는데."

"끄는데."

미르가 식탁 밑에서 픽 웃었다. 세 다리로. 넉 달 전에 채윤이 다리 하나를 새로 달아 줬는데, 미르는 그걸 "어색하다"며 잘 안 썼다. 그래서 아직 셋처럼 걸었다.

"저거 봐라." 미르가 말했다. "십오 년을 발소리로 알아맞혔는데 이제 얼굴 보고 알아맞혀. 무섭지도 않냐."

"익숙해." 한결이 말했다.

익숙했다. 정말로.

무헌이 밖에서 들어왔다.

흙 묻은 손을 털면서. 정비소 뒤에 손바닥만 한 밭을 일궜는데, 요즘 그는 아침마다 거기 나가 있었다. 상추가 자란다고 했다. 지난주엔 벌레가 다 파먹었다고 며칠을 시무룩했다.

"상추, 오늘은 괜찮아요?" 온이 물었다.

"…벌레가 또 왔어." 무헌이 말했다.

"에이."

"근데 잎이 새로 났어. 파먹힌 자리에서. 새로."

무헌이 그 말을 하고 식탁에 앉았다. 노병의 얼굴에 잠깐 뭔가 지나갔다. 웃음이라기엔 옅고, 아닌 것도 아닌.

한결은 그 얼굴을 봤다.

십오 년 전 스위치를 내린 손이었다. 그 손이 지금은 상추를 심었다. 파먹힌 자리에서 새로 난 잎을 보고 조금 밝아졌다. 무헌의 공책은 이 층 서랍에 있었다. 두꺼워진 공책. 지워진 것들의 이름이 적힌.

밭일과 이름 적는 일. 요즘 무헌의 하루는 그 둘이었다.

"밥 먹어요." 온이 말했다. "탄 국이지만."

"탄 게 맛있어." 무헌이 말했다.

"위로하지 마세요."

"위로 아니야. 진짜 탄 게 맛있어."

미르가 또 웃었다.

밥을 먹고, 온이 심부름 채비를 했다.

첫 심부름이었다. 몸을 얻고 나서. 채윤이 부품 몇 개를 옆 마을 철물점에서 받아 오라고 했다. 목록을 적어 줬다. 온이 그 종이를 접어 주머니에 넣었다.

주머니가 있는 옷. 그것도 처음이었다.

"혼자 가도 되겠어?" 한결이 물었다.

"길 알아." 온이 말했다. "지도, 다 기억해. 검일 때 다 봤어."

"그건 그렇지."

"금방…" 온이 말하다 멈췄다.

한결이 온을 봤다.

온도 멈춘 채로 있었다. 무슨 말을 하려다 만 얼굴로. 손이 문고리에 가 있었다.

"왜." 한결이 물었다.

"아니." 온이 말했다. "아무것도."

그러더니 손을 문고리에서 뗐다. 다시 부엌 쪽으로 돌아섰다. 뭔가 잊은 사람처럼.

"손." 온이 말했다.

"어?"

"손, 줘봐."

한결이 손을 내밀었다.

온이 그 손을 잡았다. 아니, 손을 뒤집었다. 손등이 위로 오게.

새 손이었다. 온의 손. 채윤이 만든. 사람 손과 거의 같은데, 아주 조금 무거운. 관절 사이에 미세한 이음매가 보이는.

그 손등이, 비어 있었다.

"뭐 해." 한결이 물었다.

온이 대답하지 않았다. 부엌 서랍을 뒤졌다. 뭔가 찾았다. 못이었다. 채윤이 어디 걸어 둘 때 쓰는, 손가락만 한 못.

한결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온."

"그려줘." 온이 말했다.

못을 한결의 손에 쥐여주면서. 그리고 제 손등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없는, 매끈한 손등을.

"별." 온이 말했다. "여기. 손등에."

한결은 그 손등을 봤다. 그리고 못을 봤다. 손이 조금 떨렸다.

"아플 텐데." 그가 말했다.

"안 아파." 온이 말했다. "감각은 있는데, 아픈 건 채윤이 낮게 맞춰 놨어. 걱정 마."

"그게 아니라."

한결이 말을 삼켰다.

십오 년 전, 아홉 살의 그가 못으로 온의 손등을 긁던 밤이 떠올랐다. 그때 온은 곤란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거 안 지워지는데." 지워지지 않는다고, 큰일이라고. 아이는 그 말이 좋았다. 안 지워진다니까 더 세게 눌렀다.

"이번엔." 온이 말했다.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지워지지 않게. 그려줘."

한결이 못을 잡았다.

온의 손등에 못 끝을 댔다. 온이 그 손을 가만히 두었다. 움직이지 않고. 사람이라면 눈을 감았을 자리에서, 온은 눈을 뜬 채로 한결의 얼굴을 봤다.

그가 못을 그었다.

지익. 금속 위에 금이 갔다. 하얀 선이 생겼다. 별의 첫 획.

"안 아파?" 한결이 물었다.

"안 아파." 온이 말했다. "계속 그려."

한결이 다음 획을 그었다. 그리고 다음. 삐뚤빼뚤한 별이었다. 아홉 살이 새긴 것만큼이나 삐뚤빼뚤한. 그때보다 손은 컸는데, 별은 여전히 못났다.

획 다섯이 모였는데, 이번에도 어딘가 끝이 안 맞았다. 별이 되다 만 모양. 꼭짓점 하나가 채 닫히지 않은.

세상에 단 하나뿐인 별. 프롤로그의 그 밤에 새겨졌다가, 손등 패널로 잘려 그립에 붙었다가, 십오 년을 검 속에서 버틴 별. 그 별이, 이제 새 손등에 다시 있었다.

한결이 못을 내려놓았다.

"됐어." 그가 말했다.

온이 제 손등을 봤다. 오래 봤다. 손가락으로 그 별을 만져 봤다. 못 자국의 결을. 하얗게 파인 선을.

"안 지워지네." 온이 말했다.

"안 지워져." 한결이 말했다.

온이 웃었다.

온이 문가에 섰다.

목록을 다시 확인하고. 주머니를 두드리고. 신발을 신고. 몸이 뻑뻑해서 신발 신는 데도 시간이 걸렸다. 한결은 그걸 도와주려다 말았다. 온이 혼자 하고 싶어 하는 것 같아서.

"다녀올게." 온이 말했다.

문을 열었다. 아침 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두 번의 겨울이 지나고, 세 번째 봄이 오는 아침이었다. 문밖으로 채윤의 간판이 보였다. 어제 막 건 간판. 페인트가 아직 덜 마른.

온이 한 발을 내디뎠다. 문지방을 넘어서.

그러다 멈췄다.

돌아봤다.

한결은 그 자리에 있었다. 부엌 앞에. 십오 년 전 벽장 안에 있던 아이가, 이번엔 벽장 밖에서 배웅하는 쪽에 서 있었다.

온이 그를 봤다. 오래.

그리고 말했다.

십오 년 동안 단 한 번도 하지 않던 말이었다. 축제에서도 하지 않았다. "그 말은 안 해"라고, 이유도 모르면서 피하기만 했던 말. 프롤로그의 그 밤에 남기고 돌아오지 못했던 말.

"금방 올게."

한결은 숨을 멈췄다.

그 말이 방 안에 떨어졌다. 아침 빛 속에. 미르가 식탁 밑에서 조용해졌다. 무헌이 밥그릇을 든 채로 멈췄다.

십오 년 전, 같은 말이 있었다. 문틈으로 눈을 맞추고, 온은 "금방 올게"라고 했다. 그리고 군인들 쪽으로 걸어 나갔다. 돌아오지 않았다. 그날 밤도, 그다음 날도, 십오 년이 지나도.

그래서 한결은 두 가지를 믿지 않게 되었다. 기계와, '금방'이라는 말.

그런데 지금, 그 말이 다시 왔다.

같은 목소리로. 같은 문가에서. 다만 이번엔 표적이 되러 나가는 게 아니라, 철물점에 부품을 받으러 나가는 걸음이었다.

"어." 한결이 겨우 말했다.

목소리가 갈라졌다.

"금방 와." 그가 말했다.

"응." 온이 말했다. "금방 올게."

그리고 문을 나섰다.

한결은 문가로 갔다.

열린 문으로 온의 뒷모습이 보였다. 골목을 걸어가는. 어깨가 조금 굽은, 왼쪽이 아주 조금 높은, 어설픈 몸의 뒷모습이. 걸음이 뻑뻑해서 조금 느렸다. 그래도 걸어갔다. 아침 빛 속으로.

십오 년 전에도 그는 이 뒷모습을 봤다.

그때는 벽장 틈으로. 문을 열 용기가 없어서. 붙잡지 못해서. 뒷모습이 멀어지고, 멀어지고, 사라졌다. 다시는 오지 않았다.

지금은 문을 활짝 열어두고 봤다.

붙잡지 않았다. 이번에도 붙잡지 않았다. 그런데 이번엔 무섭지 않았다. 붙잡지 않아도 돌아올 걸 아니까.

떠날 수 있어야 남는 것도 뜻이 있다고, 언젠가 온이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는 잘 몰랐는데, 이제 조금 알 것 같았다.

온이 골목 끝에서 한 번 돌아봤다.

손을 흔들었다. 새로 별이 새겨진 그 손등으로.

한결도 손을 들었다.

온이 사라진 골목을 한참 봤다.

뒤에서 미르가 다가왔다. 세 다리로 절뚝이며.

"안 울지?" 미르가 물었다.

"안 울어."

"우는데."

"…안 운다니까."

"인간은 다 저래." 미르가 말했다. "안 운다고 하면서 운다니까. 두 번의 겨울이 지나도 똑같아."

한결이 소매로 얼굴을 문질렀다. 미르는 못 본 척했다. 못 본 척하는 것도, 이 집에 온 뒤로 미르가 배운 것 중 하나였다.

무헌이 밥그릇을 마저 비우고 밖으로 나갔다. 밭으로. 벌레 먹은 상추를 보러. 파먹힌 자리에서 새로 난 잎을 보러.

한결은 문을 닫지 않았다.

열어 두었다. 온이 돌아올 때까지. 금방 올 테니까.

그 밤, 한결은 정비소 밖에 나와 하늘을 봤다.

온은 낮에 돌아왔다. 부품을 다 받아서. 철물점 주인이 검이었던 걸 알고 흠칫하더라는 얘기를, 별일 아니라는 듯이 했다. "익숙해질 거야, 저 사람도." 그러고는 채윤을 도와 밤늦게까지 뭔가를 조립했다.

지금은 다들 잠들었다.

한결만 나와 있었다. 하늘엔 별이 많았다. 어느 것이 방주인지 이제는 분간이 안 됐다. 여느 별들 사이에, 떠난 것이 하나 섞여 있을 뿐이었다.

"안 자?"

온이 나왔다. 옆에 섰다. 손등의 별이 어둠 속에서 희미하게 보였다.

"방주, 저 중에 있을까." 한결이 물었다.

"있겠지." 온이 말했다.

두 사람은 하늘을 봤다.

한결은 생각했다. 언젠가 저쪽에서 답을 들으러 올지도 모른다고. 우리가 잘 사는지, 궁금해서. 그때 두 번 깜빡이면 되는 거였다.

"온." 한결이 말했다. "우리 잘 살고 있나."

온이 대답하려는데.

하늘의 한 별이 깜빡였다.

한 번.

한결이 숨을 멈췄다.

그리고.

두 번.

두 번 깜빡였다. 잘 있으면 두 번. 그렇게 정한 대로.

한결은 그 자리에서 목울대가 뻐근했다.

잘 있어.

우리 잘 있어.

온이 그 별을 봤다. 손등의 별과, 하늘의 별을.

"봤어?" 온이 물었다.

"봤어." 한결이 말했다.

"두 번이었지."

"두 번이었어."

온이 웃었다. 손을 뻗어 한결의 손을 잡았다. 별이 새겨진 손등으로. 십오 년 전 벽장 앞에서 놓친 손을, 이번엔 잡았다.

한결은 그 손을 마주 잡았다.

돌아오지 않던 사람이, 돌아왔다.

이번엔 정말로, 금방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