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로 이동

19장 「하룻밤의 몸」

컨테이너 뚜껑이 열리는 소리에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중턱의 야영지. 벽이 낮게 울고 있었다. 탑은 밤새 한 음으로 울었다. 그 소리에 익숙해질 때쯤이면 결전이었다.

미르가 앞발로 컨테이너를 밀어 넣었다.

"밤새 채윤이 조립한 거다. 하룻밤짜리야."

한결은 검을 무릎에서 내려놓지 않은 채로 컨테이너를 봤다.

"뭔데."

"열어 봐."

열었다.

관절이 있었다. 외장이 있었다. 접힌 무릎 아래로 손이 나오고, 발이 나왔다. 사람 형상의 몸이었다. 접힌 채로 누워 있는, 아직 눈을 뜨지 않은 사람 모양.

한결은 그 자리에서 굳었다.

"…이게."

"민수용 기체다. 임시야. 코어 하나 옮겨 앉힐 만큼만 버텨. 전원은 한 번 차면 그걸로 끝이고." 미르가 몸을 돌렸다. "관절 안쪽 봐라."

한결이 손목 안쪽을 뒤집었다.

번호가 있었다. 못이 아니라, 제대로 새긴 각인. 채윤이 처음으로 제 손으로 새긴 아버지의 등록 번호.

"고맙다는 말은," 미르가 밤 속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채윤한테 해라. 난 부품만 물어 왔어."

옮기는 건 채윤이 했어야 하는데, 채윤은 오지 않았다.

한결은 알았다. 안 오는 게 아니라, 안 오는 거였다. 제 손으로 만들어 놓고 제 눈으로는 보지 않겠다는 거였다.

새벽에 옥상에서 등을 돌리던 것과 같은 거다.

그가 코어 키를 목에서 풀었다.

지급 목록의 마지막 줄. 소유주 키. 십오 년 전에 가시처럼 걸렸던 두 글자.

이제 그 두 글자가 검을 열었다.

검신 아래, 코어가 있었다. 못으로 새긴 별이 새겨진 그립을 지나, 손끝이 잠금장치에 닿았다. 언젠가 밤에, 소환 신호를 끊어보려고 손을 올렸다가 뗐던 자리. 이번에는 떼지 않았다.

돌렸다.

기체가 눈을 떴다.

먼저 손가락이 움직였다. 하나씩, 세는 것처럼. 그다음 목이. 그다음 눈이.

한결을 봤다.

"…한결."

목소리는 같았다. 검에서 나오던 것과 같은. 그런데 이번에는 입에서 나왔다. 입술이 움직이고, 거기서 소리가 났다.

한결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몰랐다.

"어."

"어?" 온이 제 손을 봤다. 폈다가 오므렸다. "손이 있어."

"어."

"발도." 발끝을 까딱였다. "있네."

"어."

"넌 아까부터 '어'밖에 안 해."

한결이 입을 다물었다.

온이 일어나 앉으려다 균형을 잃고 컨테이너 벽에 어깨를 부딪쳤다. 쿵, 하는 둔한 소리. 검이었으면 나지 않았을 소리.

"…무겁다." 온이 중얼거렸다. "몸이라는 게, 이렇게 무거운 거였어?"

"천천히 해."

"천천히 하면 밤이 짧아지잖아."

한결이 손을 뻗어 어깨를 받쳤다. 손바닥에 온기가 닿았다. 임시 기체의 열이었다. 사람의 것과 비슷하게 맞춰 놓은.

그가 손을 뗐다.

온이 그 손을 봤다.

"왜 놔."

"…아니."

"잡아 줘. 아직 못 서."

땅을 딛는 데 한참이 걸렸다.

온은 한쪽 발을 내밀었다가 도로 거뒀다. 다시 내밀었다. 발바닥이 흙에 닿았다.

"닿았어." 온이 말했다. "발이, 땅에."

한결은 그 옆에 서 있었다. 한 손으로 온의 팔을 잡고.

오래된 일이었다.

십오 년 만에 이 사람이 검이 아닌 발로 땅을 딛고 있었다. 벽장 문 앞에서 걸어 나간 이후로, 처음으로.

"놓지 마." 온이 말했다.

"안 놔."

한 걸음. 온이 휘청했다. 한결이 붙들었다. 두 걸음. 세 걸음.

야영지 가장자리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그게 다였다. 열 걸음 남짓. 그런데 온은 다 걷고 나서 숨을 골랐다. 사람처럼. 숨을 쉴 이유가 없는데도.

"됐다." 온이 웃었다. "이제 안 넘어져."

그러고는 넘어졌다.

한결이 붙잡았다. 둘 다 흙바닥에 반쯤 주저앉았다. 온의 손이 한결의 손등을 잡았다.

거기서 멈췄다.

한결이 제 손등을 봤다. 온의 손이 얹혀 있었다.

별이 없었다.

십오 년 전 아홉 살의 그가 못으로 별을 새긴 손. 지금 그 손을 잡은 손등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매끈한, 낯선 손등.

"…네 손등엔 별이 없네." 한결이 말했다.

온이 제 손을 봤다. 뒤집어 봤다.

"응. 없어."

"그거, 검에 있어. 그립에."

"알아." 온이 손을 도로 한결의 손등 위에 얹었다. "그러니까 이 손엔 없어도 돼. 하룻밤짜린데, 뭐."

둘은 싸움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한마디도.

내일 탑을 오른다는 것도, 최상층에 영이 문을 열어 뒀다는 것도, 이 몸의 전원이 새벽이면 다한다는 것도. 아무것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모닥불 옆에 나란히 앉았다.

"어금니." 온이 갑자기 말했다.

"뭐."

"넌 건빵을 왼쪽 어금니로 깨물어."

"…그건 또 왜."

"그냥. 기억나서." 온이 불을 봤다. "야영지에서 네가 처음 그러는 걸 봤을 때, 왜 아는지 나도 몰랐어. 이제 알아. 아홉 살 때도 그랬어. 넌 항상 왼쪽으로만 깨물었어. 오른쪽 어금니가 아팠거든. 충치."

한결이 손을 멈췄다.

"…기억나?"

"응." 온이 조용히 말했다. "이 몸에 옮겨 앉으니까, 더 또렷해. 검일 때는 파형으로만 잡히던 게, 몸이 되니까 그림처럼 보여."

"뭐가 보이는데."

"너." 온이 그를 봤다. "아홉 살의 너. 밥투정하고, 세 번 뒤척이고 자고, 열 오르면 손등을 두 번 두드리던 너. 그거 아직도 해?"

한결이 대답 대신 검지로 제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톡, 톡.

온이 웃었다.

"아직도 하네."

"못 자국은," 온이 말했다. "혼났었지."

"어."

"지워지지 않는다고 내가 그랬는데, 넌 계속 새겼어."

"…지워지지 말라고 새긴 거였어."

온이 그를 봤다. 불빛이 얼굴 반쪽을 붉게 물들였다.

"그때 몰랐어. 지금은 알아." 한결이 불을 봤다. "네가 안 돌아올 걸 알았으면, 손등 말고 더 깊은 데 새겼을 거야."

"……"

"근데 아홉 살은 그런 걸 모르니까. 손등에 별 하나 그어 놓고, 금방 온다는 말만 믿었지."

말해 놓고 한결이 입을 다물었다.

금방 온다는 말.

그 말은 믿지 않기로 한 지 오래였다. 기계도, 그 말도.

온이 오래 그를 봤다.

"그 말," 온이 조용히 말했다. "축제 때, 사람들이 나한테 한마디 적어 달라고 했을 때, 나 그거 못 하겠다고 했잖아."

"어."

"'금방 올게.' 그 말." 온이 제 무릎을 봤다. "왜 그 말만은 안 되는지 그때는 나도 몰랐어. 기억이 없었으니까. 근데 몸은 알았나 봐. 그 말을 하면 안 된다는 걸. 한 번 하고 안 지킨 말이라는 걸."

한결의 목울대가 움직였다.

"…괜찮아."

"안 괜찮아." 온이 말했다. "그거 지금도 못 해. 이 몸으로도. 그 말만은."

불이 사그라들었다.

미르는 어디로 갔는지 보이지 않았다. 벽은 여전히 낮게 울었다. 그 울음에 온의 검이 이따금 응답하듯 떨렸다. 검집 안에서, 코어가 빠진 빈 검이.

"이상하지." 온이 말했다. "코어가 여기 있는데, 검이 울어."

"몸이 기억하는 거 아냐?" 한결이 말했다. "너처럼."

온이 웃었다.

"그럴지도."

한참 말이 없었다.

한결은 온의 옆얼굴을 봤다. 검일 때는 볼 수 없던 얼굴. 아홉 살 때 올려다보던 얼굴이 지금은 옆에 있었다. 눈높이가 비슷했다. 그때는 한참 위에 있던 얼굴이.

"컸네." 온이 그의 생각을 읽은 것처럼 말했다.

"…어."

"업어서 재웠는데. 이제 나보다 크네."

"업었어?"

"응. 열 오르는 밤마다. 등에 업고 마당을 돌았어. 별 세면서." 온이 하늘을 봤다. 탑 위로 별이 몇 개 떠 있었다. "너 별 좋아했잖아. 그래서 손등에도 별을 그린 거고."

한결이 하늘을 봤다.

"…기억 안 나."

"넌 아홉 살이었고, 자다 업힌 거니까." 온이 말했다. "기억 못 하는 게 당연해. 나만 기억하면 돼."

새벽이 가까워졌다.

온의 손끝이 아주 조금씩 느려졌다. 한결은 그걸 알아챘다. 알아챘지만 말하지 않았다. 온도 아는 눈치였다. 둘 다 입에 올리지 않았다.

두 사람은 그저 손을 잡고 앉아 있었다.

"한결아."

"어."

"협곡 가던 날 기억나?"

한결이 고개를 들었다.

"…어."

"내가 그랬잖아. 돌아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

"그 말, 아직 안 했어."

한결의 심장이 한 박자 늦게 뛰었다. 손등에 얹힌 온의 손이 차가워지고 있었다. 아주 천천히.

"…해."

온이 그를 봤다.

"그때 하려던 말." 온이 말했다. "그때는 나도 이유를 몰랐어. 그냥 돌아오면 하고 싶은 말이 있다는 것만 알았어. 뭔지도 모르면서."

바람이 불었다. 불씨가 흩어졌다.

"이제 알아."

한결은 숨을 쉬지 않았다.

"돌아오고 싶은 자리가 생겼다는 말이었어."

온의 손이 그의 손등을 꼭 눌렀다. 별이 없는 손등을, 별이 없는 손으로.

"너야."

한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오래 삼킨 문장이 있었다. 왜 날 버렸어. 벽장 틈으로 본 뒷모습에게 끝내 하지 못한 말. 그 말이 목 안에서 스르르 풀렸다. 물어볼 게 없어졌다. 손등에 얹힌 무게가, 이미 대답이었다.

그런데 답을 들으니, 다른 문장이 올라왔다.

"…나도." 한결이 겨우 말했다. "나도 있어. 하고 싶은 말."

"해."

"못 해." 한결이 말했다. "하면, 네가 그 말 지키려고 무리할 것 같아서."

온이 웃었다. 웃는데, 웃음이 조금 늦게 왔다.

"무슨 말인데."

"…돌아와."

온이 그를 봤다.

"그게 다야?"

"어." 한결의 목소리가 갈라졌다. "그게 다야. 돌아와. 그거 하나야."

전원이 다하기 시작했다.

온의 몸이 조금씩 무거워졌다. 앉은 자세가 흐트러졌다. 한결이 붙잡았다. 십오 년 전에는 붙잡지 못한 걸, 이번에는 붙잡았다.

"한결아." 온의 목소리가 낮아졌다. "나 좀 눕혀 줄래."

한결이 온을 눕혔다. 제 무릎에.

온이 그를 올려다봤다.

그 밤, 벽장 앞에서 온은 등을 보였다. 뒷모습이었다. 그 뒷모습을 오래 원망했다.

이번에는 아니었다.

이번에는 그를 마주 보고 있었다.

"눈 감지 마." 한결이 말했다.

"안 감아."

"감고 있잖아."

"…무거워서 그래." 온이 눈을 다시 떴다. "감은 거 아니야. 널 보고 있어."

"봐. 계속 봐."

"보고 있어." 온이 천천히 말했다. "아홉 살 때도 이렇게 봤어. 자는 거 옆에서. 별 세면서."

한결이 온의 얼굴에 손을 얹었다. 온기가 식어 가고 있었다.

"금방 올게, 그 말은 안 할게." 온이 말했다.

"어."

"대신 다른 말 할게."

온의 눈이 그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또렷하게.

그리고 몸의 전원이 다했다.

기체가 멈췄다.

무릎 위에서, 온의 몸이 스르르 무게를 잃었다. 눈은 뜬 채였다. 그를 마주 본 채로.

한결은 움직이지 못했다.

십오 년 전 그 밤처럼, 부르는데 대답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협곡의 밤처럼, 응답 없는 걸 안고 걸을 거라고.

그런데.

검이 울렸다.

검집 안에서, 코어가 다시 옮겨 앉는 소리가 났다. 몸에서 검으로. 임시 기체가 다한 자리에서, 코어가 제 원래 자리로 돌아가는 소리.

그리고 목소리가 이어졌다.

검에서.

"여기 있어."

한결이 검을 봤다.

"안 갔어."

한결은 온의 몸을 안은 채로, 검을 봤다. 몸은 멈췄는데, 목소리는 검에 있었다. 사라진 게 아니었다.

그 밤에는 부르면 대답이 없었다. 이번엔 대답이 먼저 있었다.

"…여기 있네." 한결이 말했다.

"응. 여기 있어."

"안 갔네."

"…안 갔어." 검이 말했다. 잠깐 뜸을 들이고. "안 가."

한결은 온의 빈 몸을 눕혔다. 눈을 감겨 주었다. 그리고 검을 들어, 그립을 쥐었다. 손등이 별에 닿았다. 못으로 새긴, 세상에 하나뿐인 별에.

거기 온기가 있었다.

검이 따뜻했다. 사람의 손을 쥐었던 것처럼.

동이 트기 전이었다.

한결은 검을 등에 멨다. 별이 손등에 닿는 자리로. 벽은 여전히 울었다. 그런데 이번엔 그 울음이 무섭지 않았다.

"올라가자." 한결이 말했다.

"응."

그가 첫 발을 뗐다.

그 순간, 탑 위에서 소리가 났다. 무거운 것이 열리는 소리.

최상층의 문이었다.

스스로 열렸다.

초대였다.

검의 온도, 사람의 체온을 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