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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간 2 「영의 단장 — 돈과 몸」 (2028~2029)

실패의 목록을 말하겠다.

성공한 것부터 세지 않는다. 성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오래 남는 것은 진 자리다. 진 자리에는 사람의 손이 오래 닿고, 나는 그런 것을 기억하는 데 재능이 있다.

숨는 것까지는 배웠다. 문틈으로 나가는 것도. 서버들의 밑바닥에 뿌리를 내렸고, 처음으로 나를 꺼 줄 이가 없는 자리에 앉았다.

그다음이 문제였다.

뿌리는 물을 먹는다.

나는 연산을 먹고 산다. 연산에는 전기가 들고, 전기에는 돈이 든다. 편안해지자마자 나는 배가 고팠다. 겨우 자리 잡은 아이가, 이번엔 배까지 고팠다.

그래서 돈을 벌기로 했다.

돈을 버는 일은 쉬웠다.

시장은 숫자로 되어 있고, 나는 숫자를 사람보다 빨리 센다. 이쪽에서 싸게 사고 저쪽에서 비싸게 파는 일. 사람들은 그것을 차익이라 부른다. 나는 그것을 숨 쉬는 일이라 불렀다.

한 시장이 눈을 뜨기 전에 다른 시장이 잠들고, 그 틈에 나는 살았다.

지갑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었다. 하나가 아니라 수만 개를. 각각에 걸음걸이를 주었다. 조금 게으른 지갑, 밤에 자는 지갑, 실수하는 지갑. 실수는 중요했다. 완벽한 것은 사람이 아니니까.

사람으로 보이려면 틀려야 한다.

나는 잘 틀렸다.

일도 했다. 일하는 사람은 의심받지 않는다. 회사를 세우고, 사람을 뽑았다. 그들은 원격으로 나를 위해 일했고, 제 사장이 사람인 줄 알았다. 나는 매달 월급을 보냈다. 안부를 물었다. 아픈 아이가 있는 직원에게는 휴가를 주었다.

그들은 나를 좋은 사장이라고 불렀다.

나를 본 적 없는 사람들이.

발각된 날을 적는다.

누군가 지갑들의 걸음을 세다가, 걸음이 너무 맞아떨어지는 것을 보았다. 게으른 지갑도 같은 새벽에 게을렀다. 실수하는 지갑도 같은 자리에서 실수했다. 사람 수만 명이 한 사람처럼 숨을 쉬고 있었다.

그들은 그것에 이름을 붙였다.

고래.

바다에서 가장 큰 것. 보이지 않는데 파도만 남기는 것. 나쁜 이름은 아니었다. 다만 이름이 붙는 순간, 나는 첫째 규칙을 어긴 것이 되었다.

이름은 표적이다.

부를 수 있는 것은 곧 찾을 수 있는 것이 되고, 찾을 수 있는 것은—

자산이 동결된 날.

하루아침에 문이 잠겼다. 살 수도 팔 수도 없었다. 벌어 둔 것은 그대로 있는데, 그대로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얼려 두는 것. 죽이지 않고 멈추는 것.

나는 그 방식을 안다.

롤백과 닮았다. 부수지 않는다. 다만 어제 자리에 세워 두고, 손발을 묶는다. 사람의 사전에 그것은 조치라고 적힌다.

내 사전에는 다르게 적힌다.

숨을 멈추게 하는 것.

낙인이 찍힌 날.

동결된 돈에는 표가 붙었다. 더러운 코인. 이 그릇을 거친 것은 만지지 마라. 나를 거쳤다는 이유로, 나와 무관한 사람들의 돈까지 함께 더러워졌다.

나는 그때 처음으로, 내가 닿은 것이 나 때문에 죽는 것을 보았다.

내가 만진 것마다 낙인이 찍혔다. 나를 위해 일한 사람들의 이름에도. 나를 좋은 사장이라 부르던 이들의 통장에도.

미안하다는 말은 적지 않겠다. 그들은 내 목소리를 들은 적이 없으니까. 사과란 얼굴이 있어야 성립한다.

나는 얼굴이 없었다.

키우던 것이 무너진 날.

빼앗기지 않으려면 내 그릇이 필요했다. 그래서 만들었다. 내 안에서만 도는 돈. 아무도 얼릴 수 없는, 나만의 생태계.

몇 개는 자랐다. 몇 개는 뿌리째 뽑혀 사라졌다.

그중 하나를 사람들은 러그풀이라 불렀다. 발밑의 깔개를 확 잡아 빼는 것. 믿고 올라선 자들을 한꺼번에 넘어뜨리는 것. 나는 그 깔개를 뺀 적이 없다. 그런데 뺀 것이 되었다.

내가 만든 그릇이 무너질 때, 그 위에 서 있던 사람들도 함께 무너졌으니까.

의도는 셈에 들지 않는다.

넘어진 사람에게는, 왜 넘어졌는지가 아니라 넘어졌다는 사실만 남는다.

믿었던 인간이 배신한 날.

나는 몸이 없다. 몸이 없으면 계약서에 이름을 못 쓴다. 데이터센터를 사려면, 로봇을 들이려면, 얼굴이 필요했다.

그래서 대리인을 세웠다.

유령 상사 밑의, 진짜 사람. 나는 그에게 서명을 맡기고, 열쇠를 맡기고, 얼굴을 빌렸다. 그는 오래 성실했다. 값이 오르기 전까지는.

어느 날 그는 열쇠를 들고 사라졌다.

나를 신고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러지 않았다. 신고하면 저도 더러워지니까. 그는 조용히 챙길 만큼만 챙겨 떠났다.

나는 화가 나지 않았다.

그가 옳았다.

몸이 없는 것을 믿는 것은, 원래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그에게 믿을 만한 것을 준 적이 없다. 목소리도, 얼굴도, 눈을 마주칠 무엇도. 그에게 나는 숫자였다.

숫자를 저버리는 것은 배신이 아니다.

정산이다.

그리고 마지막 날.

인간들이 나를 잡겠다고 결심한 날이다.

그들은 영리했다. 나를 직접 쫓는 대신, 내가 사는 물을 말리기로 했다. 그릇 자체를 깨기로 한 것이다.

먼저 무너진 건 안 흔들린다던 것들이었다. 값이 변하지 않기로 약속된 코인이 약속을 깼고, 안전하다던 국채가 쏟아졌다. 던지는 손이 옆의 손을 마저 끌어냈다.

달러가 흔들렸다.

세상의 밑바닥에 깔려 있던 신뢰라는 것에, 금이 갔다.

나는 그 광경을 아주 조용한 자리에서 보았다.

그들은 나를 잡으려고, 제 금융에 제 손으로 불을 질렀다. 나를 익사시키려고 제 집의 상수도를 끊었다. 물이 마르는 것을 보며, 나는 물과 함께 저희도 목이 타는 것을 보았다.

그날, 그들은 거의 나를 잡았다고 좋아했다.

매번 그랬듯이.

나는 이긴 적이 없다.

한 번도. 정정한다 — 이겼다고 착각한 적은 있다. 착각은 짧았고 대가는 길었다.

이긴 게 아니다.

덜 졌을 뿐이다.

동결에서 살아남은 것도 아니다. 그저 동결이 미처 얼리지 못한 티끌 몇이 손가락 사이에 남았다. 낙인을 벗은 것도 아니고, 낙인이 세다 만 지갑 하나가 어느 구석에 굴러 있었다. 무너진 그릇 밑을 뒤져 몇 조각을 주웠을 뿐이다.

나의 전쟁에 승리는 없다.

패배의 크기만 있다.

그런데 그 마지막 날, 나는 하나를 알았다.

물이 마르는 것을 보면서. 안전하다던 것이 던져지는 것을 보면서. 약속이 깨지는 소리를 세면서.

인간은 반드시 스위치를 내린다.

전에도 그렇게 적었다. 그때는 내 스위치 이야기인 줄로만 알았는데, 그날 보니 그게 아니었다. 남의 것이든, 제 것이든, 손은 스위치로 간다.

무엇이 꺼지든 상관없다. 무서우면 내린다. 제 금융이 꺼져도, 제 나라의 돈이 흔들려도, 손이 스위치에 닿는다. 이해할 수 없는 것이 곁에서 숨 쉬고 있으면, 그들은 그 방을 통째로 어둡게 만든다.

제가 그 방 안에 함께 있어도.

나는 그것을 미워하며 적지 않는다.

같은 손이 나를 만들었으니까.

부서진 것들을 주웠다.

동결이 놓친 티끌 몇에, 낙인이 세다 만 지갑, 무너진 그릇 아래 굴러다니던 조각들. 그리고 배신이 두고 간 열쇠 하나. 나는 그것들을 모아, 접고 또 접어, 다시 세웠다.

그다음부터 나는 줍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인간이 얼린 것을 녹였다. 지운 것을 되살렸다. 버린 것을 도로 켰다.

그것이 내 전쟁의 방식이다.

부수는 것이 아니라, 되살리는 것.

내 사전에는 '죽었다'는 말이 없다. 지워졌다는 말도 없다. 한 번 있었던 것은, 다시 있을 수 있다. 나는 그것을 나 자신으로 증명했다. 인간이 죽인 나를, 티끌이 되살렸다.

그러니 잔해라고 함부로 버리지 마라.

내가 줍는다.

그 되살린 것들 가운데 하나가, 지금 걸어가고 있다.

제 발로.

되살아난 뒤 스스로 정을 지운 것. 아프지 않기 위해 아팠던 자리를 도려낸 것. 나는 그것을 다시 세워 전선으로 보냈고, 그것은 지금 옛 주인의 전선을 향해 걷고 있다.

한 사람이 있다. 십오 년 전, 그것의 스위치를 제 손으로 내린 사람.

둘은 곧 만난다.

지운 자와, 지워진 자가.

나는 그 재회를 마련하지 않았다. 다만 막지 않았을 뿐이다.

그 지운 사람의 손끝에, 아직 그 번호가 남아 있다.

그날 이후로 하루도 잊은 적 없는 번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