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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장 「아는 남자, 모르는 검」 — 침묵의 장

아침이 왔는데도 한결은 정비고를 떠나지 않았다.

밤새 새운 몸이었다. 눈이 뻑뻑하고 손끝이 시렸다. 그런데 자리를 뜰 수가 없었다. 작업대 위에 검이 누워 있었으니까. 별이 아래로 숨은 채로.

떠나면 안 될 것 같았다. 자리를 비운 사이에 이 검이 뭔가를 알아차릴까 봐. 아니— 그가 뭔가를 흘릴까 봐.

그는 검 옆에 앉아 있었다.

지키는 사람처럼. 아니면, 감시하는 사람처럼.

"안 자?"

온이 물었다. 절전에서 완전히 돌아온 목소리였다. 밤새 갈라져 있던 게 다 풀렸다.

"…안 자."

"밤새고 아침까지 안 자면 몸 상해." 온이 말했다. "너 원래 그렇게 안 자는 사람 아니잖아. 잠들기 전에 세 번—"

말이 멈췄다.

한결의 심장도 같이 멈췄다.

"세 번 뭐." 그가 물었다.

"…모르겠어." 온이 말했다. 조금 당황한 목소리였다. "세 번, 까지는 나왔는데. 그다음이 안 나와. 이상하다. 뭔가 있었는데."

세 번 뒤척인다.

그 말이 나오려던 거였다. 잠들기 전에 꼭 세 번 뒤척이는 것. 야영지에서 온이 알아맞혔던 것. 아홉 살 아이가 이불 속에서 하던 것.

한결은 그 말을 대신 해 주지 않았다.

"됐어." 그가 말했다. "안 나오면 말고."

시험해 볼까.

그 생각이 밤새 그의 안에서 자라 있었다.

별을 본 순간부터. 이 검이 온이라는 걸 안 순간부터. 한 가지가 계속 그를 붙들었다 — 이 검은 나를 오래 본 사람처럼 군다. 그런데 기억은 없다고 한다. 그럼 뭐가 남아서 나를 이렇게 아는 걸까.

기억이 지워졌으면, 다 지워졌어야 한다.

그런데 안 지워진 게 있었다. 목소리로 아픔을 읽는 것. 세 번, 까지 나오다 멈추는 것.

몸에 뭔가 남아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싶었다. 확인해서 어쩌겠다는 것도 아니면서. 그냥— 확인하고 싶었다. 이 검 안에 온이 얼마나 남아 있는지.

한 가지가 떠올랐다.

아무도 모르는 것. 채윤도, 미르도, 세상 누구도 모르는 것. 오직 온만 알았던 것.

아홉 살 무렵이었다.

한결은 열이 잘 올랐다. 감기도 잘 걸리고, 별것 아닌 것에도 몸이 달아올랐다. 그럴 때 버릇이 하나 있었다.

검지로 제 손등을 두 번 두드리는 것.

톡, 톡.

왜 그랬는지는 자기도 몰랐다. 열이 오르면 손이 근질거렸고, 그러면 반대쪽 손등을 두 번 두드렸다. 아무 뜻도 없는 버릇이었다. 누가 가르쳐 준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온은 그걸 알았다.

그가 손등을 두 번 두드리면, 온은 하던 일을 멈추고 다가왔다. 이마에 손을 댔다. 그리고 말했다.

열 있네. 해열제, 서랍 둘째 칸.

한 번도 틀린 적이 없었다. 그가 두드리기만 하면 온은 알았다. 말로 아프다고 하기도 전에.

세상에 그걸 아는 건 온뿐이었다.

한결은 손을 봤다.

제 손등을. 열이레 전에 검을 쥐던 손. 밤새 별을 만지던 손.

지금은 열이 없었다. 두드릴 이유가 없었다.

그런데 그는, 검지를 세웠다.

미쳤나.

이런다고 뭐가 나오나. 이 검은 기억이 없다. 아홉 살의 손등 두드리는 버릇 같은 걸 기억할 리가 없다. 그런데—

그런데 이 검은 세 번, 까지 나왔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한결은 검을 봤다. 작업대 위의 검을. 시각 센서가 어디 붙어 있는지는 몰라도, 이 검이 그를 본다는 건 알았다. 열이레 동안 이 검은 그를 봐 왔다.

지금도 보고 있을 거였다.

그는 검지를 손등에 가져갔다.

그리고, 두 번 두드렸다.

톡, 톡.

정적이 흘렀다.

한결은 숨을 죽이고 검을 봤다. 아무 일도 안 일어나면. 아무 반응도 없으면. 그럼 아홉 살은 정말 다 지워진 거였다. 온 안에 남은 건 목소리뿐인 거였다.

그러길 바랐던가. 아니길 바랐던가. 그도 몰랐다.

검은 조용했다.

한 박자. 두 박자.

역시 아무것도—

"해열제."

온이 말했다.

한결은 숨을 들이켰다.

"서랍 둘째 칸." 온이 말했다. 아주 자연스럽게. 물 흐르듯이. "…있어. 거기."

정비고 안이 조용했다.

난로에서 나무 타는 소리만 났다. 한결은 검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손등에 검지를 댄 채로. 굳어서.

온이 먼저 침묵을 깼다.

"…어."

"…"

"방금 거, 뭐였지."

목소리에 물음표가 붙어 있었다. 아니, 물음표보다 더 큰 것이. 자기가 방금 뭘 말했는지 자기도 모르는 목소리였다.

"내가 방금 뭐라 그랬어?" 온이 물었다.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해열제라고 했지. 내가." 온이 스스로 확인했다. "서랍 둘째 칸이라고. 근데— 왜 그 말이 나왔지. 여기 서랍 같은 것도 없는데. 정비고에. 해열제도 없고."

"…"

"한결." 온의 목소리가 조금 떨렸다. "나 방금, 왜 그 말 했어?"

한결은 검지를 손등에서 뗐다.

천천히. 들킬 게 있는 사람처럼.

"…네가 아까 열 얘기 했잖아." 그가 겨우 말했다. "몸 상한다고. 그 얘기 하다가 나온 거 아니야?"

거짓말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온을 위한 거짓말이었다. 온이 지금 자기 안에서 뭐가 새어 나왔는지 모르게 하려는.

"아니야." 온이 말했다. 단호하게. "그 얘기랑 상관없어. 그냥— 자동으로 나왔어. 네가 뭘 했는데, 그거 보고 나온 것 같아. 너 방금 뭐 했어?"

한결은 손을 감췄다. 무릎 아래로.

"아무것도 안 했어."

"거짓말." 온이 말했다.

또 그 말이었다. 거짓말.

"진짜야." 그가 말했다. "그냥 앉아 있었어."

"…이상해." 온이 말했다. 캐묻기를 멈추지 않았다. "뭔가가 방금, 나한테서 튀어나왔어. 나도 모르는 게. 이런 거 처음이야. 소름 돋아. 검이 소름이 돋을 수 있나. 근데 그런 느낌이야."

한결은 눈을 감았다.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손등 두드리는 걸 봤을 때, 머리보다 몸이 먼저 대답했다. 해열제, 서랍 둘째 칸. 그를 재우고 먹이고 열을 재던 손이 아직 그 안에 있었다.

"한결."

온이 다시 불렀다.

"응."

"너 아까부터 자꾸 이상한 짓 해." 온이 말했다. "밤새 나 안 자고 지켰지. 그리고 아까 눈. 사람 보듯 봤어. 그리고 방금— 뭔가 했어. 나한테서 이상한 말 튀어나오게. 너 나한테 뭐 하는 거야?"

한결은 대답을 골랐다.

절전에서 막 깨어 감각이 둔하다는 검이, 그가 뭘 하는지 하나하나 짚어 냈다. 셋 다 맞았다.

"실험." 그는 말했다.

거짓말 대신, 절반의 진실을 골랐다.

"무슨 실험."

"네가 얼마나 회복됐나 보는 거." 그가 말했다. "협곡에서 크게 다쳤잖아. 절전까지 갔고. 반응 속도 같은 거 확인하는 거야. 정비사가 하는 거 있잖아. 자극 주고 반응 보는 거."

"…정비는 채윤이 하는데."

"채윤 자잖아."

"아까 새벽에 트럭 몰러 나갔다며."

한결은 입을 다물었다.

아까 그가 한 거짓말이었다. 채윤이 새벽에 트럭 몰아야 해서 안 깨웠다고. 그런데 지금 채윤이 자고 있다고 또 말할 뻔했다. 하나를 대면 그 다음 것도 앞뒤를 맞춰야 했다. 목 안이 뻑뻑했다.

"…트럭 몰고 와서, 자." 그가 수습했다. "새벽에 나갔다가 들어와서 잔다고."

"아." 온이 말했다. "그렇구나."

믿는 목소리였다. 다행히도.

한결은 이마의 땀을 닦았다.

난로가 있어도 정비고는 춥지 않을 만큼만 따뜻했다. 그런데 손바닥이 젖어 있었다.

오래 아무도 안 믿고 살았다. 안 믿으면 속일 일도 없었다. 그런데 지금은 속이고 있었다. 그것도, 세상에서 그를 가장 잘 아는 존재를.

목소리 하나로 아픔을 짚어 내는 검이었다. 그런 검한테 거짓말을 하는 건, 벽에 대고 안 보이는 척하는 거나 같았다.

그런데도 해야 했다.

조금만 더.

그는 생각했다. 조금만 더 이렇게 두자. 온이 자기가 누군지 아는 순간, 뭐가 부서질지 모르니까. 채윤이 이걸 알기 전에. 이 검과 채윤의 아버지가 무슨 상관인지 알기 전에. 그때까지만.

그때까지만, 아무것도 모르는 검이게 두자.

"한결."

"…응."

"나 궁금한 거 하나 물어봐도 돼?"

한결은 부지깽이를 쥐었다. 손에 뭔가 쥐고 있어야 할 것 같았다.

"물어봐."

"너, 나 처음 봤을 때." 온이 말했다. "보급창에서. 내가 처음 말 걸었을 때. 너 표정이 이상했어. 지금 생각하면. 그때 왜 그랬어?"

한결의 손이 멈췄다.

이름이 뭐지.

…온.

보급창에서의 그날이 다시 왔다. 십오 년 전에 죽은 목소리가 검에서 흘러나온 순간. 그가 그 자리에 굳었던 순간. 도망치고 싶었던 순간.

"…놀랐어." 그가 말했다. 이건 진실이었다. "말하는 검을 처음 받아서. 나 원래 말하는 검 거부하던 사람이었잖아. 그래서 놀란 거야."

"그거 말고." 온이 말했다. "그거 말고 다른 게 있었어. 놀란 거랑 달랐어. 뭐랄까— 무서워하는 것 같았어. 나를. 왜?"

한결은 눈을 내리깔았다.

이 검은 그때부터 봤다. 열이레 전 그 순간부터. 그가 무서워한 걸. 그런데 왜 무서워했는지는 몰랐다.

죽은 줄 알았던 목소리가 살아 돌아와서. 나를 버린 목소리가 검이 되어 내 손에 쥐어져서. 그래서 무서웠다고. 그렇게 말할 수는 없었다.

"…무서운 게 아니라." 그가 말했다. "익숙한 목소리였어. 어디서 들은 것 같은. 그래서 이상했던 거야."

"어디서 들었는데?"

"몰라." 그는 말을 잘랐다. "기억 안 나. 그냥 그런 느낌이었어."

온은 잠시 조용했다.

"너도 그렇구나." 이윽고 온이 말했다.

"…뭐가."

"기억 안 나는데 느낌만 있는 거." 온이 말했다. "나도 그래. 너를 처음 봤는데, 처음 같지가 않았어. 어디서 오래 본 것 같았어. 근데 기억은 없어. 느낌만 있어. 이상하지. 우리 둘 다 그러네."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둘 다 느낌만 남아 있었다. 서로를 오래 본 느낌. 그 느낌이 어디서 왔는지, 아는 건 그 혼자였다.

난로의 불이 한 번 크게 일었다가 잦아들었다.

한결은 부지깽이로 장작을 뒤집었다. 불티가 튀었다. 그는 그걸 오래 봤다. 검을 안 보려고, 불을 봤다.

"한결."

"…또 뭐."

"너 아까 손등 두드렸지."

한결의 손이 굳었다.

부지깽이를 쥔 채로. 불티가 튀는 걸 보던 채로. 온이 그걸 봤다. 시각 센서로. 그가 검지로 손등을 두 번 두드린 걸.

"아니야." 그가 말했다.

"봤어." 온이 말했다. "두 번 두드렸어. 톡, 톡. 그거 하고 나서 나한테서 그 말이 나왔어. 해열제 어쩌고. 그게 연결돼 있는 것 같아. 네가 그거 하니까 내가 그 말을 했어. 너 그거, 알고 한 거지?"

한결은 부지깽이를 내려놓았다.

숨겨지지 않았다. 이 검은 다 봤다. 무뎌졌다면서, 절전에서 막 깼다면서, 다 봤다.

거짓말을 더 할 수 있었다. 우연이라고. 그냥 손이 근질거려서 두드린 거라고. 그런데—

그런데 문득,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 검이 제 안에 남은 걸 더듬어 찾아가는 걸, 막고 싶지 않았다. 그게 온한테로 가는 길이라면.

"…알고 했어." 그가 말했다.

"왜."

온이 물었다.

"그냥." 그가 말했다. "네 반응 보고 싶었어."

"뭘 알고 있길래." 온이 물었다. 목소리가 낮아져 있었다. "내가 손등 두드리는 거 보면 그 말 할 줄, 너 알고 있었어. 그치? 모르면 그걸 왜 해. 너 나에 대해 뭐 알아, 한결?"

한결은 검을 봤다.

작업대 위의 검을. 별이 아래로 숨은 검을. 지금 그에게 묻고 있는 검을. 내가 누군지 아느냐고. 네가 나에 대해 뭘 아느냐고.

알았다. 다 알았다.

너는 온이다. 나를 키운 온이다. 아홉 살의 내가 손등을 두드리면 해열제를 꺼내 주던 온이다. 지금 그 몸이 그걸 기억해서, 검이 됐는데도 그 말이 튀어나온 거다.

그 말이 목까지 올라왔다.

올라왔다가, 다시 내려갔다.

"…아무것도 몰라."

그가 말했다.

"거짓말." 온이 말했다.

"…"

"너 지금 또 그 목소리야." 온이 말했다. "아픈 목소리. 뭔가 숨길 때 나는 목소리. 아침에 안 다쳤다고 할 때랑 똑같아. 너 나한테 뭔가 숨기고 있어. 아침부터. 그게 뭐야?"

한결은 대답하지 못했다.

"말해." 온이 말했다. 애원에 가까운 목소리로. "나 무서워. 내 안에서 자꾸 모르는 게 튀어나와. 네가 뭘 아는 것 같은데 말을 안 해. 이게 제일 무서워. 나 혼자만 모르는 것 같은 거."

나 혼자만 모르는 것 같은 거.

그 말이 한결의 명치에 박혔다.

맞았다. 온이 누구인지, 세상에서 온만 몰랐다. 가장 알아야 할 사람이.

한결은 걸상에서 일어섰다.

검에서 몇 걸음 떨어졌다. 온의 목소리에서. 그 애원에서. 조금 떨어져 있어야 목소리가 안 무너질 것 같았다.

"온."

"응."

"내가 지금 하는 말, 믿어 줄래."

"…뭔데."

한결은 숨을 골랐다.

"나는 너한테 아무것도 안 숨겨." 그가 말했다. 천천히. 한 마디씩. "그런데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게 있어. 나쁜 게 아니야. 너 해치는 것도 아니야. 그냥— 아직 말할 때가 아닌 거야. 조금만 기다려 줘. 곧 말할게."

거짓과 참이 반씩 섞인 말이었다.

숨기는 게 있는 것도, 나쁜 게 아니라는 것도 참이었다. 곧 말하겠다는 것만— 그가 참이 되기를 바라는 쪽이었다.

온은 오래 조용했다.

절전에서 깬 판단이 느려서였는지, 그의 말을 재고 있어서였는지. 한결은 그 침묵을 견뎠다. 견디는 게 벌 같았다.

"…알았어." 이윽고 온이 말했다.

"…"

"기다릴게." 온이 말했다. "근데 하나만 약속해."

"뭘."

"곧, 이라는 거." 온이 말했다. "그거 지켜. 인간들은 곧이라고 해 놓고 안 지키더라. 나 그거 싫어. 왜인지는 모르겠는데. 곧이라는 말, 나 진짜 싫어."

한결은 그 자리에 굳었다.

곧.

금방 올게.

온이 그 밤에 한 말이었다. 벽장 문틈으로 눈을 맞추고. 금방 올게.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다. 온은 그걸 기억 못 했다. 그런데 몸이 알았다. 곧, 금방, 그런 말이 싫다는 걸. 그 말을 하고 돌아오지 못한 게, 이 검 어딘가에 새겨져 있었다.

"…지킬게." 한결이 말했다. 목소리가 겨우 나왔다. "곧, 말할게. 약속해."

한결은 정비고 벽에 등을 기댔다.

다리에 힘이 풀렸다. 밤을 새운 탓만은 아니었다. 이 검과 나눈 대화 하나하나가 그를 깎아 냈다. 거짓말을 할 때마다. 온이 그 거짓말을 짚을 때마다. 온이 애원할 때마다.

그는 눈을 감았다.

감으면 아홉 살의 소파가 나왔다. 손등을 두드리면 다가오던 온이 나왔다. 열 있네, 하던 목소리가 나왔다.

떠졌다. 뜨면 작업대 위의 검이 있었다. 그 목소리가 든 검이.

감으나 뜨나 온이었다.

온이 사라진 뒤로 줄곧 그랬다. 그때는 원망하려고 감은 눈 속에서 온을 붙들었다. 지금은—

지금은 뭘 하려고 온을 보는지, 그도 몰랐다.

밖에서 발소리가 났다.

한결은 눈을 떴다. 발소리를 알았다. 채윤이었다. 부츠 끄는 소리. 아침마다 정비고로 오는 걸음.

안 돼.

그 생각이 먼저 왔다. 채윤은 안 된다. 아직. 채윤이 오면 검을 볼 거였다. 정비사의 눈으로. 손으로 깎아 맞춘 그립을 아는 눈으로. 그리고—

발소리가 문 앞에서 멈췄다.

"한결? 온 깼어?"

문이 열렸다. 채윤이 들어왔다. 눈이 부어 있었다. 잠을 설친 얼굴이었다.

"깼어." 한결이 말했다. 목소리를 골랐다. "방금."

"진짜?" 채윤의 얼굴이 밝아졌다. 부은 눈이 대번에 펴졌다. "온! 야, 살아 있네! 걱정했잖아, 이 검아. 협곡에서 그렇게 몸을 던지면 어떡해."

"…걱정 끼쳐서 미안." 온이 말했다.

"됐어, 미안은." 채윤이 성큼성큼 다가왔다. 작업대 쪽으로. "어디 보자. 반응 속도부터 볼게. 어젯밤 계측기에서 이상한 게—"

한결은 몸이 먼저 움직였다.

작업대와 채윤 사이로. 검 앞으로.

"채윤."

"…왜."

"온 아직 좀 그래." 그가 말했다. 급하게. "막 깼거든. 판단이 느려. 좀 있다가 봐 주면 안 될까."

채윤이 그를 봤다.

이상하다는 얼굴이었다. 한결이 검 앞을 막고 선 게. 정비사와 검 사이를 병사가 막은 게.

"…너 왜 그래." 채윤이 물었다. "정비하겠다는데 왜 막아."

"막는 게 아니라—"

"비켜 봐." 채윤이 말했다. "밤새 검이 어떤 상태였는지 봐야 해. 계측기 로그도 확인하고. 야, 이거 내 일이야. 아버지 A/S는 딸이 한다고 내가—"

말이 멈췄다.

한결은 채윤의 얼굴을 봤다.

채윤의 시선이 그를 지나쳐 있었다. 그의 뒤로. 작업대 옆으로. 어젯밤 그가 벗겨서 내려놓은 것으로.

외장 조각이었다.

손으로 깎아 맞춘 그립 외장. 밤새 그가 벗겨 낸 조각. 별이 있던 자리를 덮고 있던 그 조각. 작업대 구석에 아무렇게나 놓여 있던.

채윤이 그것을 집어 들었다.

"이거." 채윤이 말했다. "네가 벗긴 거야?"

한결은 대답을 못 했다.

채윤은 벌써 그 조각을 손 안에서 돌려 보고 있었다. 정비사의 손이었다. 부품을 보면 자동으로 돌려 보고, 이음매를 확인하고, 안팎을 뒤집어 보는 손.

"손으로 깎았네, 이거." 채윤이 중얼거렸다. "공장 성형이 아니야. 누가 손으로 맞춰서 붙인 거야. 그것도 아주 오래전에. 접착 자국 삭은 거 봐. 이게 언제 적—"

조각을 뒤집었다.

안쪽이 위로 왔다.

채윤의 손이 멈췄다.

정비고 안이 조용해졌다.

난로 소리도, 온의 목소리도, 아무것도 안 들렸다. 한결의 귀에는 채윤의 숨소리만 들렸다. 아주 얕아진 숨소리.

채윤은 그 조각을 등불 아래로 가져갔다.

아침 빛이 들어오는데도, 정비사의 손은 등불을 찾았다. 더 잘 보려고. 조각 안쪽에 새겨진 것을, 더 정확히 보려고.

거기 뭔가 있었다.

한결은 그 각도에서 볼 수 없었다. 채윤의 어깨에 가려져서. 그런데 채윤의 등이 굳는 걸 봤다. 조각을 쥔 손끝이 하얘지는 걸 봤다.

"채윤." 한결이 불렀다.

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조각을 든 채로. 그 안쪽을 본 채로. 굳어서.

숫자였다.

한결은 채윤의 어깨 너머로 겨우 봤다. 조각 안쪽에 새겨진 것. 못으로 새긴 게 아니었다. 별처럼 삐뚤빼뚤한 게 아니었다. 정교하게, 공구로 새긴. 정비사가 부품에 각인을 남기듯 새긴.

번호였다.

일련의 숫자였다. 정비공 등록 번호 같은. 어느 정비소, 어느 정비사의.

채윤의 손이 떨리고 있었다.

한결은 채윤의 다른 손을 봤다. 공구벨트에 걸린 손을. 거기 걸린 인식표를. 채윤이 십오 년째 걸고 다니는, 아버지의 인식표를.

채윤의 눈이 조각과 인식표 사이를 오갔다.

한 번. 두 번.

같은 번호였다.

"…한결."

채윤이 말했다.

목소리가 아까와 완전히 달랐다. 아침에 온을 반기던 목소리도, 정비하겠다고 성을 내던 목소리도 아니었다. 처음 듣는 목소리였다.

"…응." 한결이 말했다.

채윤은 그를 안 봤다. 조각만 봤다. 조각에 새겨진 번호만.

"이거." 채윤이 말했다. "이 안쪽에 있는 번호."

"…"

"우리 아빠 번호야."

한결은 아무 말도 못 했다.

"우리 아빠 정비공 등록 번호." 채윤이 말했다. 조각을 든 손이 점점 더 떨렸다. "내가 십오 년째 목에 걸고 다니는 거랑, 똑같은 번호. 한 자리도 안 틀려. 이거, 우리 아빠가 새긴 거야."

정비고가 조용했다.

온의 목소리도 멈춰 있었다.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모르는 채로. 자기 이야기인 줄도 모르는 채로.

채윤이 고개를 들었다. 이번엔 한결을 봤다.

눈이 흔들리고 있었다.

"우리 아빠 번호가."

채윤이 말했다.

"왜 여기 있어?"